버스 중앙정류장 청소노동자의 비애
10일 새벽 1시께 김영일씨가 서울 영등포역 버스중앙차로 정류장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
야근·휴일수당 없이 매일 닦지만
서울시 계약업체, 외주 줘 ‘고용 불안’
이달초 노동자 숨진채 발견도
“‘서울시에서 직접고용’ 이뤄졌으면” 사람과 버스가 뜸해지는 밤 11시가 되면 버스중앙차로 정류장에선 또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10일 0시30분, 서울 영등포역 중앙차로 정류장에 밀대 걸레를 든 김영일(42)씨가 서 있었다. 김씨의 동료는 중앙차로 정류장 옆 차선에 빨간 안전삼각대를 세워 길을 막았다. 두 사람이 선 중앙차로 양옆으로 자동차가 쏜살같이 달렸다. “물을 뿌리면 겨울엔 바로 얼어붙고, 여름에는 금세 마르니까 최대한 서둘러 닦아야 해요. 매일 밤 정류장 10개씩을 청소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람들이 편하게 앉고 기대는 걸 보면 보람을 느끼죠.” 김씨가 익숙한 동작으로 물걸레질을 하곤 남은 물기를 닦아내며 말했다. 그런 김씨의 자부심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쉼없이 뒤흔든다.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은 서울에서만 하루 평균 454만명. 버스는 서울 시민의 발이다. 그러나 정작 중앙차로 정류장 운영은 서울시 몫이 아니다. 서울시는 2004년 중앙차로 정류장을 지어주는 대가로 광고 사업권과 정류장 유지·관리 업무를 ‘제이씨데코’라는 민간업체에 맡겼다. 이 회사는 그 가운데 청소 업무만 따로 떼내 용역업체에 맡겼다. 이른바 외주화다. 제이씨데코와 용역업체의 계약 내용에 따라 청소 노동자의 운명이 결정된다. ‘해고 불안’과 더불어 안전문제도 심각하다. 김씨는 “10월에 음주운전자가 몬 차가 정류장을 덮친 적이 있어요. 정류장을 닦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차가 지나는 걸 알 수 없어 등골이 오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정류장 지붕 위에 서서 걸레질을 할 때도 안전모 말고는 따로 안전장비가 없다. 이렇게 일해서 한 달에 155만원가량을 받는다. 야간·휴일근무 대가는 따로 받지 못한다. 김씨를 포함한 중앙차로 정류장 청소 노동자들은 지난 7월 노조를 만들어 원·하청에 안전 보장과 고용 안정을 요구했다. 서울시에도 민원을 제기했다. 회사의 답변은 10월6일 해고 통보였다. 그나마 서울시의회의 노력으로 10월 말 복직이 이뤄지고 임금 인상, 고용 승계 관련 교섭도 진행되고 있다. 김씨는 “상황이 좋아지긴 했지만 고용불안은 여전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가 자신들을 직접 고용하길 바라고 있다. 고용불안은 김씨의 동료 최연식(47)씨를 덮쳤다. 김씨는 지난 2일 최씨가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여름 아침 7시 일을 마치고 함께 서울시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한 사이다. 그 모습을 떠올리며 김씨는 최씨의 1인시위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골랐다. 영정 속 최씨는 “서울시 하청에 재하청, 우리는 서울시 노예가 아닙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김씨는 “최씨가 살아 있을 때 외친 ‘서울시 직접고용’의 꿈이 이뤄지는 걸 하늘나라에서라도 지켜보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2년째 간접고용 비정규직 청소·경비 노동자를 직접고용 ‘공무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 같은 청소 노동자는 서울시와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환 대상에서 빠져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회사에 야간 수당을 지급하는 등 노조와 협상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며 “도급 계약이 아니라서 현재로서는 이들을 직접 고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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