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문제점과 대안
하청은 ‘원청’보다 위험한 일…
다단계하도급으로 시간도 쫓겨
하청 산재 많으면
원청업체 불이익 줘야
하청은 ‘원청’보다 위험한 일…
다단계하도급으로 시간도 쫓겨
하청 산재 많으면
원청업체 불이익 줘야
국가인권위원회의 ‘산재(산업재해) 위험직종 실태조사’에서 조선·철강 분야 하청노동자 열에 아홉명(88%)이 “원청보다 산재 위험이 높다”고 답한 건 그만한 근거가 있어서다. 산재 사망자 가운데 하청노동자의 비율은 2012년 36.4%에서 올해 6월엔 39.1%로 높아졌다. 현대중공업에선 올해에만 10명이, 현대제철에선 지난해에만 10명의 하청노동자가 연이어 숨져 사회적 논란이 됐다. 조사에 참여한 노동자와 전문가들은 위험 업무의 외주화, 촉박한 일정으로 인한 안전 소홀 등을 원인으로 꼽고 원청에 산재의 책임을 묻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하청노동자들의 산재 발생 빈도가 높은 이유는 원청노동자보다 위험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현대하이스코의 한 하청노동자는 “원청 노동자들은 주로 위험이 적은 업무를 맡고, 작업환경도 좋은 곳에서 일하지만 하청은 그 반대”라며 “하청노동자는 안전교육마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고 말했다.
촉박한 작업 일정 탓에 안전이 등한시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현대중공업의 한 하청노동자는 “산재 사고의 대부분이 원청에서 공기 단축을 요구한 뒤에 발생한다”며 “시간 여유를 주고 안전 조처를 확보한 뒤 일을 맡기면 하청 산재 사고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삼호중공업 원청 안전 담당자도 “날짜를 맞춰야 하는데 마냥 기다리거나 안전 조처부터 요구하기는 어렵다”고 털어놨다. 특히 조선업계는 주문 일정에 맞추려고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작업하는 ‘물량팀’을 만들어 재하도급을 주는데, 이들의 안전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산재를 경험한 하청노동자의 92%가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이익을 받을 우려(41%)나 회사가 못 하게 해서(25%)다. 현대제철 하청노동자는 “산재 신청을 안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해고의 압박 때문”이라며 “파리목숨 신세인 하청노동자들은 가능한 귀책사유를 안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하청노동자의 산재 사고가 아무리 많아도 원청 업체 노동자의 산재만 적으면 산재보험료를 할인받는 현실이 ‘산재 은폐’를 야기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해왔다.
실태조사팀은 하청노동자들한테 위험이 전가되고 있는 상황을 개선하려면 △원청 책임 강화 △하도급 규제 △노동자 참여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사를 총괄한 주영수 한림대 교수는 “새롭게 제·개정되는 법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 원청 사업주를 처벌하는 규정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며 “사고가 많이 나는 위험 업무는 직접 고용해 원청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하고, 물량팀 등 다단계 하도급도 금지해야 한다”고 짚었다. “노조가 있는 곳이 그나마 낫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민주노총 이창근 정책실장은 “하청노동자와 노동조합에 위험한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재계·여당의 반대와 고용노동부의 소극적 대처로 발이 묶여 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실장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려면 국회가 조속히 논의를 시작하고 정부도 이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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