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노동

[단독]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한 동대표 말린 경비원 해고

등록 2015-01-04 17:37수정 2015-01-04 17:54

서울 도봉구 ㅆ 아파트 전경. 박수진 기자
서울 도봉구 ㅆ 아파트 전경. 박수진 기자
동대표가 입주자회의에 문제 제기한 뒤 용역업체가 계약 해지
동대표 “그런 사실 없다”…용역업체 “불성실한 태도가 이유”
주민들 “누구보다 성실” 반박…동료들도 “일방적인 해고” 비판
아파트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를 하던 동대표에게 다른 장소에 주차해줄 것을 요청한 경비 노동자가 이 동대표의 민원으로 지난달 31일 갑자기 해고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4일 서울 도봉구 ㅆ아파트 주민들과 관리사무소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권아무개(67)씨는 2014년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

아파트 주민들은 권씨의 해고가 갑작스럽게 진행된 일이라고 말했다. ㅆ아파트 주민 ㄱ씨는 “권씨가 동대표를 맡고 있는 아파트 주민과 장애인 구역 주차를 두고 승강이를 벌인 사실로 눈 밖에 나서 동대표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게 불만을 표시했고, 이 얘기가 아파트 경비 용역업체 쪽으로 들어가서 해고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다른 주민 김아무개(38)씨도 “지난달 31일 출근하는데, 권씨가 울면서 아파트 밖으로 나가고 있길래 왜 그러냐 물었더니 ‘장애인 구역주차 문제로 승강이를 벌였다가 해고를 당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파트 주민들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권씨는 지난달 중순 이 아파트의 한 동의 대표인 김아무개씨가 경비실 앞에 지정된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권씨는 김씨에게 “여기는 장애인 주차구역이니 다른 곳으로 주차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김씨는 “나도 장애인이라 다른 곳에 주차할 수 없다”고 답했다. 권씨는 “장애인이라면 관리사무소에 가서 장애인 자동차 표지 스티커를 발부받아 자동차에 부착하고 별도의 지정된 주차 장소를 배정받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김씨는 이 말을 무시하고 자리를 떠났다.

<한겨레>가 이 아파트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김씨는 장애인이 아니며 차에도 장애인 자동차 표지가 붙어있지 않았다. 김씨가 주차한 구역은 교통사고로 3급 장애 판정을 받은 이 아파트 주민 정아무개씨가 배정받아 주차하고 있는 곳이었다.

ㅆ 아파트 장애인 주차장. 박수진 기자
ㅆ 아파트 장애인 주차장. 박수진 기자

이에 대해 김씨는 “권씨가 다른 곳에 주차하라고 얘기를 해서 곧바로 다른 곳에 주차했다. 권씨와 승강이를 벌인 적도 없고, 이 문제를 가지고 입주자대표회의에 불만을 제기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경비 용역업체도 권씨가 장애인 주차구역을 두고 동대표와 벌어진 시비 때문에 해고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ㅆ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주차 문제로 승강이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관리사무소에는 경비원들의 인사 권한이 없다”며 “책임은 용역업체에 있으니 그쪽으로 연락해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에 경비원을 파견하고 있는 ㅁ용역업체 관계자는 “장애인 주차구역 문제로 주민과 경비원이 다퉈 경비원을 해고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며 “1년 동안 업무 평가를 해온 결과 권씨의 근무 태도가 성실하지 않았고, 경비원들 사이를 이간질 시킨다고 판단돼 재계약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한달 전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파트 주민들과 경비원들은 용역업체의 설명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ㅆ아파트에는 현재 24명의 경비 노동자가 ㅁ용역업체와 1년 단위로 계약하고 간접고용 형태로 근무하고 있다. 이 업체는 지난 12월10일께 24명의 경비 노동자를 불러 2015년 최저임금제 시행과 관련한 회의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모든 경비 노동자들에게 형식적인 ‘근로계약 만료 통지 확인서’에 자필 확인을 받았다. 또 같은 자리에서 경비 노동자 2명에게 12월31일자로 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했다. “이들이 경비 노동자들 편을 갈라 다툼을 일으킨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계약 해지를 통보받은 2명에 권씨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이 아파트의 한 경비 노동자는 “당시엔 권씨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해고된 권씨가 근무한 ㅆ 아파트 안 경비 초소. 박수진 기자
해고된 권씨가 근무한 ㅆ 아파트 안 경비 초소. 박수진 기자

아파트 주민들도 권씨의 근무 태도가 업체 쪽 설명과 달리 성실했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 남아무개씨는 “안 그래도 권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관리사무소에 찾아가 항의했다”며 “권씨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나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는 아기 엄마를 만나면 짐을 대신 들어주거나 분리수거를 도와줬다. 일 잘하고 친절한 권씨를 왜 해고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김아무개씨도 “권씨는 다른 누구보다 성실하기로 소문이 자자하게 났던 분이기에 근무 태만이라는 얘기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주민 민원 하나로 한 사람의 생계가 좌지우지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 정아무개씨도 “권씨는 근무 마지막 날인 12월30일에도 아파트 주민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단지 내 길 위에 언 얼음을 삽으로 깨던 분”이라고 말했다.

권씨의 동료들도 그의 해고는 이해할 수 없는 조처라고 지적했다. 한 경비 노동자는 “권씨는 평소 일도 참 잘 하고 주민들에게 인기도 좋았다”며 “보통 용역업체 계약이 1년 단위인데, 권씨가 주민들과 잘 지냈기 때문에 3~4년 넘게 일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비 노동자도 “용역업체에서 한 번쯤은 동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해야 했는데 한 주민의 일방적인 말만 듣고 부당하게 해고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ㅁ용역업체 대표는 “노동법에 의거한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권씨의 계약 해지는 문제가 될 게 없다”며 “우리 업체가 올해(2015년) 12월까지만 ㅆ아파트와 계약한 상태여서 입주자대표회의나 주민들 사이에서 컴플레인이나 요구 사항이 나오면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수진 이재훈 기자 jjinp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