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56명 설문조사
대리기사·막노동 등 했지만
평균 월 소득 150만원 줄어
77% “가장 괴로운 건 경제적 빈곤”
설문자 전원 ‘회사 복귀 희망’
“복직이 가장 큰 치유 방법”
대리기사·막노동 등 했지만
평균 월 소득 150만원 줄어
77% “가장 괴로운 건 경제적 빈곤”
설문자 전원 ‘회사 복귀 희망’
“복직이 가장 큰 치유 방법”
해고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ㄱ(44)씨는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난다. 2009년 8월 ‘옥쇄파업’이 끝나고 몸과 마음의 충격 탓에 뚜렷한 원인도 없이 1년간 두 다리가 마비된 그다. “죽고 싶다는 충동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 애들 잘 키우고 싶었는데 해주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해주는 경제적 고통이 가장 크다.”
연봉 5500만원을 받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ㄱ씨는 ‘그날’ 이후 월 170만~180만원을 버는 일용직 노동자가 됐다. 주부이던 아내도 일용직 노동자로 나서고 적금과 보험을 해지했다. 하지만 아이 둘을 키우느라 생활비가 모자라 6년간 대출받은 빚이 7000만원에 이른다. 경제적 고난은 모든 것을 흔들었다. 마음의 병이 생기고, 평소 웃고 지내다가도 ‘돈’ 얘기가 나오면 가족 간에 다툼이 생긴다. 지난해 11월 마지막 희망이던 대법원마저 “정리해고는 정당했다”고 판결하자, ㄱ씨 부부는 1주일간 출근도 하지 않은 채 울었다. “법원만 믿고 6년간 버텨왔는데 그 희망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거죠. 회사와 협상이라도 시작하면 희망이 좀 있을 텐데….”
‘해고는 살인’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은 <한겨레>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함께 지난해 12월22일부터 지난 2일까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로 거듭 확인된다. 그새 26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이 자살이나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살아있는 이들은 ‘경제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설문조사에 답한 해고자 56명의 해고 전후 월평균 소득은 363만원에서 213만원으로 줄었다. 평균 44.7살에 3.5명의 가족을 둔 이들한테는 식비·공과금·옷값 같은 생활비(월평균 196만원) 대기에도 빠듯한 수입이다. 모자란 생활비나 자녀 교육비, 의료비, 주거비 등은 빚으로 충당해야 했다. 이 때문에 해고 뒤 가구당 평균 5276만원의 빚이 늘었다.
해고 뒤 이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경제적 빈곤’(77%)이다. 한번 정규직 일자리에서 밀려난 해고노동자들은 갈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질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쌍용차 해고노동자’라는 낙인은 거주 지역인 평택에서의 재취업을 어렵게 만들었다. 응답자의 42%가 주된 직업으로 ‘단순 노무 종사’를 꼽았고, 50%가 4인 미만 직장에 다녔다. 해고 뒤 일자리는 주로 대리기사, 택시기사, 주유소 등 아르바이트, 보험 모집인, 막노동 등 진입 장벽이 낮은 저임금·임시직이다. 71%가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는 자리라고 답했다. 국민연금 같은 공적 사회보험은 언감생심이다. 그나마 56명 중 24명이 건강보험을 유지하는 정도다. 안정적인 직장 울타리 밖 세상에 이들을 보호해줄 사회안전망은 없었다는 얘기다.
해고는 ‘정신적 사망 선고’이기도 했다.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의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70%가 ‘그렇다’고 답했다. 2011년 평택대학교가 쌍용차 해고자와 무급휴직자 등 45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52.5%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의 좌절이 깊어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또 다른 해고노동자 ㄴ(45)씨는 “교회도 다니고 가족도 있어 도움을 받고 있지만 갈수록 정신적 어려움이 심해진다. 예전에는 친하게 지내던 동료의 배신과 해고로 믿을 사람이 없어 괴로웠다면, 이제 5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앞으로 내가 뭔가를 더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압도한다”고 말했다.
해고노동자의 아내이기도 한 권지영 ‘와락’(쌍용차 노동자·가족 치유공동체) 대표는 “시간이 지나며 해고의 충격이 잊혀지는 게 아니라 더 커진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어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가족들과 갈등도 심하다. 복직한 무급휴직자들이 빠르게 회복하는 걸 보면 어떤 심리치료보다도 복직이 가장 큰 치유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설문조사 응답자 중 복직을 바라지 않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중 85%는 복직을 간절히 원한다고 답했다. 한 해고노동자는 설문지에 “해고노동자들이 일상으로, 정든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힘을, 결단을 모았으면 합니다”라고 썼다. 이들이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은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복직뿐이라는 뜻이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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