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7명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대법원 승소 확정 판결을 받은 오지환씨가 2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정 앞에서 동료 조합원의 헹가래를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하청노동자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
“현대차 정규직 직원” 원심판결 확정
2년이상 파견근무는 직접 고용 인정
엔진 등 간접생산까지 ‘불법파견’
타 완성차업체 사내하청에도 영향
현대차의 ‘파견법 위반’ 처벌 관심
“현대차 정규직 직원” 원심판결 확정
2년이상 파견근무는 직접 고용 인정
엔진 등 간접생산까지 ‘불법파견’
타 완성차업체 사내하청에도 영향
현대차의 ‘파견법 위반’ 처벌 관심
대법원이 사실상 현대자동차의 모든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다. 현대차 울산공장에 이어 아산공장의 사내하청노동자도 불법파견 확정판결을 받고 직접생산 공정인 조립(의장)라인뿐 아니라 엔진 등 간접 생산 공정까지 불법을 인정받아, 현대차는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번 판결로 현대차를 비롯해 사내하청을 남용하는 대부분 제조업체의 고용 관행을 바꾸라는 사회적 압박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대법원 제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26일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된 김준규(42)씨 등 7명이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이들 중 4명이 “현대차의 정규직 직원”이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현대차가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수행할 작업량과 작업 방법, 작업 순서, 작업 속도, 작업 장소, 작업 시간 등을 결정하고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를 직접 지휘하거나 사내협력업체 소속 현장관리인 등을 통해 구체적인 작업 지시를 했다”는 근거 등을 들어 하청노동자들이 현대차와 근로자 파견관계에 있다고 판단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대한 파견을 금지하기 때문에 현대차가 파견노동자를 받아 쓰는 것은 불법이다. 재판부는 2년 이상 파견 땐 원청이 직접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옛 파견법 조항에 따라 김씨 등 4명을 2002~2003년부터 이미 현대차의 정규직이라고 판단했다. 강신한씨 등 다른 3명도 불법파견을 인정받았지만 근무 기간이 2년이 안 돼 패소했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업무 내용, 정규직·비정규직 혼재근무 여부 등과 관계없이 현대차 자동차 제작 공정 전체에서 불법파견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대법원이 확정한 데 있다. 2012년 대법원은 현대차 울산공장 조립라인에서 일하다 해고된 사내하청 노동자인 최병승씨의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처음 인정했다. 이날 판결은 울산공장에 이어 아산공장의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조립라인뿐 아니라 엔진공장 등 간접생산공정의 노동자까지 불법파견으로 봐 적용 대상의 범위가 매우 넓다.
게다가 대법원은 정규직과 섞여 일하지 않고 하청노동자들만 모여 일한 김준규·김기식(41)씨도 불법파견으로 판단했다. “하청업체 노동자만 근무해 현대차가 사용자의 지위에서 지휘·명령할 여지가 없다”는 현대차 회사 쪽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규직과 섞여 일하지 않아도 원청의 지휘·감독을 피할 수 없는 자동차 공장 같은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생산 방식의 특성이 재차 반영된 셈이다.
노동자 쪽 소송을 대리한 김기덕 변호사는 “간접생산공정은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현대차의 주장은 더는 성립하지 않게 됐다”며 “자동차 불법파견의 적용 대상을 확장한 대법원 판결은 다른 완성차 항소심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9월 불법파견 1심 소송에서 승소한 현대차 하청노동자 1179명뿐 아니라 지엠대우·쌍용차·기아차 하청노동자들도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불법파견 사업장’임이 확인된 현대차는 법률적 책임 외에 사회적 비판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당장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의 노조인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회사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진환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은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우리 싸움이 옳았음을 대법원이 확인해줬다”며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신규채용으로 법적 책임을 피하려는 현대차는 더는 버틸 명분이 없으니 정규직 전환을 위한 특별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파견법 위반에 따른 형사처벌도 다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우선 검찰이 2010년과 2012년 등 3차례에 걸쳐 이뤄진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에 대한 고소·고발(파견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한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부터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이날 최병승씨에 대한 대법원 판결 때와 마찬가지로 “대법원 판결을 따르겠으나, 승소한 4명에 대한 불법파견이 인정됐을 뿐”이라며 판결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나섰다.
“2003년 노조를 만들다 해고된 우리들로는 만감이 교차하네요. 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연차를 쓰겠다고 했다가 회사한테 식칼 테러를 당하는 사건을 거쳐 노조를 만들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정규직으로 인정됐네요.” 동료들의 축하 헹가래 덕에 하늘을 몇 차례 오르내린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자 오지환(43)씨가 말했다. 2003년 현대차 공장 가운데 처음으로 사내하청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된 불법파견 싸움의 산증인들의 손을 12년 만에 대법원이 들어줬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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