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선우씨가 14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3.14 쌍용차 희망행동 행사에 참석해 공장내 92일 째 굴뚝 농성을 바라보고 있다. 평택/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김선우 시인과 쌍용차 고공농성 ‘동행’
“작은 씨앗들이 희망과 존엄 꽃 피웠으면”
“종말 치닫고 있지만 결국 파국 아닐 것”
땅에 서 있는 시인과 하늘의 굴뚝농성자는
함께 해피엔딩 드라마를 꿈꾸며 낙관했다
“작은 씨앗들이 희망과 존엄 꽃 피웠으면”
“종말 치닫고 있지만 결국 파국 아닐 것”
땅에 서 있는 시인과 하늘의 굴뚝농성자는
함께 해피엔딩 드라마를 꿈꾸며 낙관했다
“창근씨! 이거 보여? 흰 민들레 씨앗들이야. 창근씨는 ‘씨앗 하나’를 갖고 와 달라고 말했지만, 난 ‘씨앗들’을 갖고 왔어. 작은 씨앗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희망, 사랑, 존엄의 꽃을 피웠으면 좋겠어.”
“선우 누나는 왜 희망에 낙관이 없는 거 아냐? 하나가 불안해서 그래? 하나부터 시작하는 거야. 난 괜찮아. 지금 싸움은 TV 드라마 같은 거라고 생각해. 종말로 치닫고 있지만 결국은 파국이 아니라 해피엔딩으로 갈 거야. 그럼 이 싸움이 힘든 게 아니거든. 긴박하고 재미있는 거잖아.”
땅에 서 있는 시인은 하늘에서 흩어 뿌리라며 민들레 씨앗을 올려 보냈고, 70m 높이의 하늘에 떠 있는 노동자는 땅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인 드라마를 얘기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같은 말은 했다. 그건 ‘낙관’이었다.
14일 늦은 낮 4시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김선우 시인과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은 그렇게 1시간가량 화상 통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은 이창근 실장이 지난해 12월13일 새벽 4시께 굴뚝으로 올라간 지 92일째 되는 날이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우연히 김 시인과 이 실장이 화상통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화상통화로 이 실장을 응원했다. 백 소장은 이날 저녁 6시부터 ‘3·14 쌍용차 희망 행동’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굴뚝 위에서 이창근 동지는 일대 서사시를 쓰고 있어요.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그걸 제대로 읽어 내려가야 해. 이 동지는 내려오면 연락해 맛있는 거 사 줄 테니.” 백 소장은 이날 83살 생일을 노동 현장에서 맞았다.
김선우 시인과 이창근 실장의 인연은 4년 전 시작됐다. 그해 1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에 있는 35m 높이의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농성은 309일 동안 이어졌다. 크레인에서 홀로 ‘고공 시위’를 벌인 김 지도위원을 응원하려고 시민들은 ‘희망 버스’를 탔다. 김선우 시인도, 이창근 실장도 이 버스에 올랐다.
김선우 시인은 기억한다. “한진중공업 사태 때 가장 열정적으로 연대한 이들이 쌍용차 분들이었죠. 김 지도위원이 ‘쌍용차 사람들도 힘들게 싸우면서 이렇게 연대해 주니 미안하다’고 말할 정도였죠. 그렇게 창근씨와의 인연은 시작 된 거죠.”
지난 겨울 시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춘천에서 웅크린 채 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시인이 좋아하는 봄, 김 시인은 오랜만에 봄나들이를 했다. 이날 아침엔 한겨레신문사 2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시 낭송을 했다. 2013년 <한겨레> 창간 25돌을 축하하기 위해 쓴 기념시 ‘사람과 가장 가까운 바람에게’, 한진중공업 사태를 소재로 한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2011년을 기억함’ 두 편을 낭송했다.
시인의 다음 행선지는 쌍용차 평택공장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이창근 실장의 아들인 주강이를 만났다. ‘굴뚝 아빠’를 둔 주강이는 그에게 다가 와 “안녕하세요?”라며 씩씩하게 인사했다. 그는 주강이를 끌어안고 “괜찮아? 괜찮아? 잘 지내니?”라며 몇 번씩 물었다. 주강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말했다. “설날 세배를 안 했는데, 오늘 세배할래?” 주강이는 “네”라며 길에서 넙죽 절을 했다.
시인은 쌍용차 굴뚝이 바라다보이는 철조망에 빨강 ‘희망 자물쇠’를 달았다. 자물쇠는 쌍용차 희생자와 해고자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뜻한다. 희망 자물쇠 달기는 쌍용차 희생자 26명을 상징하는 2만6000개에 이를 때까지 이어진다. 총 개수는 시민 1000명이 쌍용차 희생자 1명을 온전히 품어주겠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자물쇠만 남겨둔 채 열쇠는 주머니에 넣었다. “열쇠를 잘 간직하고 있다가 쌍용차 문제가 해결되는 날 자물쇠를 풀 거예요.”
춘천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길, 시인은 집회에 참석하려고 이곳을 찾은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났다. 1여년 만에 다시 만만 둘은 깊은 포옹을 나눴다. 자매 같기도 했고 동지 같기도 했다.
기자가 시인에게 물었다. “한진중공업 사태 때와 지금 세상이 달라졌나요?”
시인이 답했다. “흐흐. 세상은 쉽게 좋아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잖아요. 조금씩이라도 나아가지게 만들어야지.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시인이 덧붙였다. “그게 바로 낙관이겠죠.”
앞서 김선우 시인은 한겨레 주총에서 2개의 시를 낭송했는데, 그 중 하나인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는 크레인 고공농성을 했던 김 지도위원을 모티브로 한 시다.
‘이 눈부신 착란의 찬란,
이토록 혁명적인 낙관에 대하여
사랑합니다 그 길 밖에’
-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중에서
혁명은 어지럽고 어수선한 순간의 강렬함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혁명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그것이 낙관이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 낙관 때문에 시인은 혁명을 포기할 수 없다. 그의 혁명은 연대와 사랑으로 묶인 인간 공동체이기 때문에.
평택/글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4일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열린 3.14 쌍용차 희망행동 행사장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백 소장은 이날 83세 생일을 노동현장에서 맞았다. 평택/ 김봉규 기자
쌍용자동차 고공농성 92일째인 14일 오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앞에서 전국 각지역에서 모인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3.14 쌍용차 희망행동 행사를 하고 있다. 행사측에서 쌍용자동차 공장 외벽에 레이저로 글귀를 쏘고 있다. 평택/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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