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트무트 자이페르트 전 한스 뵈를러 재단 경제사회연구소 소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강조하며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바람직한 모델의 하나로 언급했다. 그러나 독일 경제학 박사인 하르트무트 자이페르트(71·사진) 전 한스 뵈클러 재단 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하르츠 개혁은 “노사정 타협의 산물도 성공한 개혁도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한겨레>와 만난 자이페르트 전 소장은 “정규직 일자리가 생길 자리에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를 여럿 만든 하르츠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한국이 하르츠법의 부작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이페르트 전 소장은 25일 독일의 에버트재단과 민주노총·한국노총이 공동 주최하는 ‘한국과 독일의 노동시장 개혁’ 포럼에 참가하려고 한국을 찾았다. 포럼은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둘러싼 노사정의 견해차가 큰 상황에서 독일판 노동시장 구조개편인 하르츠 개혁의 교훈을 짚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독일은 2002년 실업률이 12%까지 치솟자 연방노동청은 페터 하르츠 당시 폴크스바겐 인사 담당 이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를 꾸려 노동시장 개편을 논의했다. 독일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노조의 반대 속에도 “파견노동 2년 기간제한 삭제와 ‘미니잡’(당시 최대 월급 400유로) 활성화”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 방안을 추려 2003년 법제화했다. 하르츠법이 그것이다. 자이페르트 전 소장은 “파견노동 규제 완화나 미니잡 확대와 동시에 실업급여 수급 기간을 줄여 실업자가 질 낮은 일자리를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자이페르트 전 소장은 하르츠법 시행 이후 10여년간 저임금·불안정 노동이 증가했다고 전했다. 그는 “2003년 규제완화가 시작된 뒤 미니잡은 550만개에서 2007년 690만개로, 파견노동자는 같은 기간 32만7000명에서 73만1000명으로 폭증했다”며 “저임금 노동자(독일 통계청 기준 시급 10.15유로 미만)도 전체 노동자의 20% 수준까지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르츠법으로 실업률이 낮아졌다’는 일부의 평가에 대해, 그는 “얼마나 고용이 늘었는지는 독일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고용 증대에 기여했음을 실증할 데이터도 없다”고 반박했다.
한국 정부가 독일 하르츠법을 따르겠다는데, 정작 당사자인 독일은 저임금·불안정 노동 확대라는 부작용을 해소하겠다며 하르츠법 수정에 나섰다. 저임금 확산을 막으려고 올해부터 법률로 최저임금(시간당 8.5유로)을 도입했고, 정규직 노동을 대체하는 파견노동을 줄이려 파견기간제한(18개월) 규정의 재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자이페르트 전 소장은 “고용 불안정 문제가 심화되고 노조의 압력도 거세져 독일 정부가 조정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노동 개편이 노동조건 개선이 아니라 오히려 격차를 키우는 방향으로 논의되는 것 같다”며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세워 기업이 비정규직을 남용하지 않도록 하는 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사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