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7일 하인호(맨 오른쪽) 인천비즈니스고 교사와 이 학교 학생들이 함께 고깃집 채용 광고를 보며 근로계약서를 쓰고 있다. 수업 뒤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친구한테 추천하고 싶냐’는 질문에, 참여 학생 25명 모두가 “그렇다”고 답했다.
[월요리포트] 이 아이들이 자라 노동자가 됩니다
노동권 가르치는 고교에 가보니…
노동권 가르치는 고교에 가보니…
“시급은 (올해 최저임금 5580원보다) 20원 올려서 5600원 해줄게.”
정윤주(18·고3)양의 말에 전민희(17·고3)양이 발끈한다. “너무 적잖아. 이걸로 햄버거 세트 하나 못 먹는데.” 정양도 맞받아친다. “다른 데는 이 정도도 안 줘.”
3월27일 오후 인천광역시 남구 도화동 인천비즈니스고. 이 학교 ‘경제와 세상’ 동아리 학생 25명이 서로 사용자와 노동자 역할을 나눠 근로계약서를 쓰기에 앞서 ‘밀당’을 하고 있었다.
잠시 뒤 이향주(18·고3)양이 제기한 ‘현실론’에 밀려 밀당은 맥없이 끝났다. “20원 올리기도 쉽지 않은데 더 올리는 건 힘들어. 어차피 우리는 을이잖아.” 이양은 “잠깐 일할 수 있고 월급도 바로 나와서 호텔 웨딩홀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근로계약서는 쓰지도 않았어요. 점심시간은 겨우 10분이었고요. 출근도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다들 가만히 있는데 나만 뭐라고 하면 돈 안 줄까봐 그냥 일했어요.” 이들은 오전 11시~오후 6시(7시간) 근무에 1시간의 중간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최저임금보다 20원이 많은 시급을 주는 내용의 근로계약서를 썼다.
사용자·노동자 나눠 역할극 수업
“시급 5600원” “햄버거 세트도 못사”
“수습하는 거 보고” “1년이상 계약”
노동현장선 어려움 닥쳐야 관심 다른 모둠에 있던 박민지(17·고2)양은 “일하는 곳은 롯×××고요, 일단 시급 5000원에 3개월 수습으로 일을 시켜보고 그 이후에 시급을 올려주려 한다”는 내용의 근로계약서를 내밀었다. 이를 본 하인호 교사는 “3개월의 수습 기간을 두고 이 기간에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려면 근로계약 기간을 1년 이상으로 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비록 노동자가 시급 5000원에 동의했더라도 법률 위반이에요. 그리고 ‘롯××× ○○점’과 같이 노동자가 일할 구체적인 장소까지 근로계약서에 써 넣어야 합니다”라고 알려줬다.
하 교사는 “18살 미만은 하루 7시간, 18살 이상은 하루 8시간 넘게 일하면 초과시간에는 시급의 150%를 받아야 합니다. 1주일에 15시간 일하면 요일에 상관없이 유급휴일 하루를 보장받는 것도 꼭 알아둬야 해요”라고 거듭 강조했다. 근로계약서 작성법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노동시간, 주휴수당 등과 같은 기본권리를 알려주는 게 이날 수업의 목적이다.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수업 뒤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오늘 배운 교육이 학교에서 꼭 필요하냐’ ‘친구한테 추천하고 싶냐’는 질문에 수업에 참여한 25명 모두가 “그렇다”고 답했다. 전민희양은 “근로계약서 쓰는 법을 배운 건 매우 유익했다”며 “다른 학생들한테도 가르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다 수업 내용과 달리 부당한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설문 문항(중복 응답)에 고용노동부나 경찰 등에 신고하겠다(73%), 교사나 교육청의 도움을 받겠다(46%)고 답했다. 허정민(17·고2)양은 “근로계약서를 써보니까 제대로 따지지 않으면 손해를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근로계약서를 안 쓰거나 약속 내용을 지키지 않으면 따져야겠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대다수의 노동자는 학교가 아닌 노동현장에서, 그것도 어려움이 닥쳐야 노동인권교육을 접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 5일 박아무개(46)씨 등 10여명이 인천시 부평구 금속노조 인천지부 사무실에서 노동법 수업을 듣고 있었다. “시급 1만원을 받는 사람이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면 얼마나 받아야 할까요?” 강사로 나선 최현아 노무사의 질문에 노동자들은 한동안 갈팡질팡했다. 그러던 와중에 “14만원”이란 정답이 들렸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8시간은 시간당 1만원씩 받고, 그 뒤 4시간은 연장근로시간이라 1.5배를 받아야 하죠.”
박씨 등은 삼성 휴대전화 케이스 제작업체인 모베이스에서 일하다 지난해 말 회사를 불법파견으로 고소하며 노조에 가입했다. 고용노동부는 불법파견을 인정했지만, 박씨는 최저임금을 받으며 2년 넘게 일하는 동안 ‘파견’이 뭔지 알지 못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며 노동법이 뭔지 처음 알았다. 학교에서 배웠다면 아플 때 쉬고, 월급도 제대로 받았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곁에 있던 이아무개(41)씨도 “회사는 잔업이 있냐 없냐만 알려주지 내 권리는 모른 척한다”며 “불법파견이나 차별시정제도도 노조에서 들었다”고 말했다.
최정우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전략본부 국장은 “회사에 다니면서도 월급, 연차, 통상임금 계산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노동교육은 평생교육이다. 학생뿐만 아니라 예비 노동자, 일하는 노동자 모두한테 충분한 노동교육을 통해 자신의 권리와 노동의 소중함을 배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글·사진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시급 5600원” “햄버거 세트도 못사”
“수습하는 거 보고” “1년이상 계약”
노동현장선 어려움 닥쳐야 관심 다른 모둠에 있던 박민지(17·고2)양은 “일하는 곳은 롯×××고요, 일단 시급 5000원에 3개월 수습으로 일을 시켜보고 그 이후에 시급을 올려주려 한다”는 내용의 근로계약서를 내밀었다. 이를 본 하인호 교사는 “3개월의 수습 기간을 두고 이 기간에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려면 근로계약 기간을 1년 이상으로 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비록 노동자가 시급 5000원에 동의했더라도 법률 위반이에요. 그리고 ‘롯××× ○○점’과 같이 노동자가 일할 구체적인 장소까지 근로계약서에 써 넣어야 합니다”라고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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