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만난 13명의 해고노동자들 -
2012년 4월21일 경기도 쌍용차 평택 공장 정문 앞. 스물두개의 관 위로 봄비가 내렸다. 2009년 대량 정리해고 뒤 세상을 등진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 22명을 추모하는 자리였다.
그날 상주 격인 쌍용차 해고자 김남오·서맹섭·이덕환씨를 비롯해 변성민(대우자동차판매)·송기웅(포레시아)·유명자(재능교육)·윤민례(시그네틱스)·윤주형(기아차)·이경중(쓰리엠·3M)·이미옥(케이이씨·KEC)·장석천(콜텍)·최일배(코오롱)·한정희(케이이씨)·홍종인(유성기업)씨 등 해고노동자 14명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순간] 그날 이후로 살았지만 죽었습니다…나는, 해고노동자입니다)
3년이 흘렀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그들을 만났다.
복직해 노동자로서 시민의 일상을 살아가는 이, 아직도 해고자의 굴레를 벗지 못한 이, 노동운동가의 삶을 새로 개척하는 이, 연락을 끊고 잠적한 이…. 3년의 시간이 빚어낸 삶의 색깔은 많이 다르다.
죽음 - 윤주형
2012년 4월21일 오후 경기도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만난 기아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윤주형씨 모습(왼쪽)과 2015년 4월26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의 윤주형씨 묘소(오른쪽). 고아로 자라 공장과 동료를 집과 가족으로 여긴 윤주형씨는 2013년 1월28일 서른여섯의 나이에 “버티는 일조차 너무 힘들다”며 세상을 등진 뒤에야 복직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박종식 기자
14명 가운데 윤주형은 다시 만날 수 없었다. 2010년 4월 해고된 뒤에도 그는 늘 “밝고 생기발랄하고 씩씩했다”(동료 노동자들의 증언). 2007년 사내하청 노동자로 입사한 기아차 화성공장에 삶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싶어한 그다.
고아로 홀로 자란 그는 공장과 동료를 집과 가족으로 여겼다. 복직 투쟁에 열심인 이유를 묻는 기자들한테 “갈 데가 여기밖에 없어서”라고 답한 까닭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살아서는 공장에 돌아가지 못했다.
2013년 1월28일 서른여섯의 한창나이에 “허기진 마음을 채울 수가 없어, 버티는 일조차 너무 힘이 들더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공장 동료들은 그의 발인을 열하루나 미루며 회사를 압박한 끝에 그의 원직 복직을 받아냈다.
지난해 9월엔 서울중앙지법이 기아차의 모든 사내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전태일과 함께 누워 있는 그는, ‘해고자 전원 복직’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자신의 오랜 꿈이 실현될 길이 설핏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을까.
여전히…
이덕환, 김남오, 서맹섭, 홍종인, 윤민례, 유명자
(시계 방향으로 맨 위부터) 이덕환·김남오·홍종인·유명자·윤민례·서맹섭씨
편히 쉴 집이 있었을 것이다. 신용불량자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올해 입사 20돌을 기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는 이덕환(43)씨의 삶을 치명적으로 비틀어놓았다. 2012년 4월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만난 해고 노동자 14명 가운데 이씨를 포함한 7명은 여전히 해고자다.
이덕환씨는 요즘 경기도 포천에서 노인들을 대신해 농사일을 해주는 농협 소속 기간제 노동자로 생계를 잇고 있다. 의정부에 있는 아내와 아들·딸의 얼굴은 한 달에 한번 보기도 어렵다. 신산스런 일상에도 이씨는 복직의 꿈을 접을 수 없다.
“다들 그만두고 다른 일 찾으라고 하지만 정리해고됐다는 걸 아직도 인정할 수 없어요.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2014년 2월 서울고법이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을 땐 하늘을 나는 듯했는데, 같은해 11월 대법원은 “정리해고는 정당하다”며 쌍용차 해고자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했다.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복직은 사람의 눈물과 땀과 연대와 사랑과 ‘의지의 낙관’이 없이는 영원히 피지 않는 꽃이다.
시그네틱스의 윤민례(46)씨는 2001년 노조 활동을 하다 해고된 뒤 14년째 복직 투쟁 중이다. 2007년 정리해고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19일로 복직 투쟁 3000일을 맞았다. 콜텍 해고자 장석천씨는 생계의 무게를 견디느라 복직 투쟁에 힘을 싣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스럽다.
재능교육 해고자인 유명자(47)씨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습지 교사의 유일한 보호막인 ‘단체협약’의 원상 복구를 요구하며 2600일 넘게 농성 중이다.
‘노조 파괴’ 사업장으로 악명 높은 유성기업 해고자인 홍종인(42)씨는 2011년 10월 해고됐다 2013년 6월 법원 판결 뒤 잠시 복직됐으나 다시 해고됐다.
“일하는 게 정말 즐거웠어요. 아직도 그때 입던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꿈을 꿔요”라는 윤민례씨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스친다.
새 삶-변성민, 최일배
변성민(45)·최일배(47)씨는 원직 복직에 성공하진 못했다. 하지만 더는 ‘해고 무효, 원직 복직’을 외치지 않는다. 원직 복직을 얻어내진 못했지만, 어쨌든 노사 합의로 오랜 싸움을 마무리했다. 지금 둘은 노동조합 상근자로서 노동운동가의 새 삶을 걷고 있다.
최일배씨는 2005년 코오롱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구미공장 노동자 78명을 정리해고해 일터를 잃었다. 최씨는 함께 해고된 동료들과 ‘코오롱 정리해고 분쇄투쟁위원회’를 만들어 10년을 싸웠다. 고되고 외로운 세월이었다. 마지막엔 12명만 남았을 정도로. 끝을 보고 싶었다.
최씨는 지난해 11월 “10년은 넘기고 싶지 않다”며 40일간 곡기를 끊었다. 지난해 12월 최씨 등 해고자들은 회사 쪽과 노사문화 발전 기금을 만들어 정리해고자 등을 위해 쓰기로 하고 긴 싸움을 접었다.
최씨는 “끝까지 버텼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많았고 복직을 얻어내진 못했으니 ‘아름다운 합의’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하지만 우리는 늘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어요”라고 말했다. 최씨는 “구미를 과거 노동운동이 활발하던 때로 돌리고 싶다”며, 3월부터 가족과 직장이 있던 구미에 터를 잡고 민주노총 구미지부 조직부장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3년 전 대우자동차판매(대우자판) 해고자였던 변성민씨는 지금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조직국장이다. 요즘은 성과급제 도입 반대를 내걸고 4월22일부터 파업 중인 공공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조합원들을 돕고 있다.
변씨는 지엠대우가 자동차 판매권을 회수하며 2011년 1월31일 정리해고한 220명의 한명이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싸웠고, 2013년 말 새 회사가 운영하는 울산 버스공장으로 채용에 합의했다. 하지만 변씨는 여러 이유로 울산 버스공장에 가지 않았다. 대신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니까 노동자의 삶이 나아져야 국민의 삶도 나아지는 거 아니냐”며, 2014년부터 노동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다.
복직-송기웅, 이경중, 이미옥, 한정희
송기웅(46)씨는 이제 해고노동자가 아니다. 지난해 3월27일 대법원이 “정리해고는 무효”라며, 2009년 5월26일 해고 뒤 5년간 복직 투쟁을 벌여온 송씨 등 포레시아 해고자들의 손을 들어준 덕분이다. 그날 송씨는 판결 소식을 듣고는 이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판결을 앞두고 열흘 남짓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탓이다. 해고의 고통이 큰 만큼, 노동자들한테 복직은 꿈결같은 큰 기쁨이다.
3년 전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만난 해고자 14명 가운데 송씨 등 4명이 공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복직 요구를 선선히 들어주는 회사는 없었다.
복직하려면 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으로 이어지는 긴 법정 투쟁의 터널을 거쳐야 했다.
송기웅씨가 그랬고, 쓰리엠(3M) 해고자이던 이경중(35)씨도 그랬다.
이씨는 2011년 회사 안에서 집회를 열려고 스피커를 들이려다 벌어진 실랑이를 빌미로 징계해고된 뒤 줄곧 ‘부당해고’로 인정받았지만, 회사의 거듭된 불복으로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경남지방노동위원회 결정을 하루 앞둔 2012년 5월30일 회사가 돌연 정리해고를 철회해 복직하게 된 케이이씨(KEC) 이미옥(45)·한정희(42)씨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복직은 일터와 동료와 월급뿐만 아니라 ‘우리가 정당했다’는 자부심도 돌려줬다. 송기웅씨는 “억울해서 포기하지 않고 싸워 우리 싸움이 정당했다는 걸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복직 뒤 생활의 여유가 생긴 이경중씨는 결혼했고, 지난해 4월 딸도 얻었다.
그러나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은 동화 속 해피엔딩과 같지 않다. 예컨대 송기웅씨가 속한 금속노조 포레시아지회는 정리해고를 겪으며 110명이던 조합원이 20명으로 크게 줄었다. 그만큼 노동조합의 힘과 목소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숱한 기업이 정리해고에 앞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내세우지만, 실제 목적은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글 김민경 기자
torani@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