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조사등 미흡한채 자의적 판단
같은 일 같은 통증에도 결과 달라
같은 일 같은 통증에도 결과 달라
1분당 5~10번씩, 매일 평균 600여대의 자동차에 망치질을 하던 노동자가 오른쪽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다면 산업재해일까?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은 엇갈린다.
현대자동차 노동자 ㄱ씨는 2003년 입사 뒤 차체를 고열의 오븐에 넣어 페인트를 건조하는 과정에서 변형이 일어난 부분을 복구하려 날마다 1분당 5~10회씩 평균 600여대의 차에 망치질을 했다. 2012년 오른쪽 팔꿈치에 심한 통증을 느낀 ㄱ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ㄱ씨의 통증이 “업무와 인과관계가 없다”며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근로복지공단은 2007년 ㄱ씨와 같은 공장에서 비슷한 일을 하다 똑같이 오른쪽 팔꿈치 통증에 시달리던 ㄴ씨의 산재 신청은 인정했다. 당시 ㄱ씨는 입사 9년차지만 ㄴ씨는 입사 10개월차였다.
같은 업무를 하고 같은 통증에 시달렸지만 산재 인정이 엇갈린 이유는 ‘근로복지공단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의 판단이 자의적인 탓이라는 지적이다. 권동희 노무사(법률사무소 새날)는 “산재를 신청해도 현장조사, 전문가 평가 등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 서울고법은 지난 3월 ㄱ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업무 연관성을 인정해 산재로 판단했다.
ㄱ씨와 ㄴ씨가 앓은 ‘근골격계 질환’은 목, 어깨, 팔꿈치, 손목, 허리 등의 통증이 지속되는 병이다. 반복 동작을 하거나 무리하게 힘을 쓰고,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제조업, 건설, 학교급식, 금융, 미용, 전화상담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서 흔하다. 근골격계 질환을 이유로 한 산재 신청은 2006년 4130건에서 2014년 5743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반면 2006년 65.9%이던 산재 인정률은 2011년 46%까지 낮아졌다. 이에 2010~2013년 ‘산재보험 제도 개혁을 위한 노사정 티에프(TF)’가 꾸려져 근골격계 질환 인정 기준 등이 개선되면서 산재 승인율이 2014년 54.1%로 다시 늘어났지만 과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20일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 노동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인정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에 현대차, 현대중공업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 50명의 집단 산재를 신청했다.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근로복지공단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가 노동자의 작업환경을 제대로 파악하려는 노력은 게을리한 채 나이가 들어 걸린 퇴행성 질환으로 보는 등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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