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좁은 광고판서 29일간 고공농성…산들바람조차 흉포했다

6월11일부터 고공농성 중인 기아차 화성공장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 최정명(오른쪽)·한규협씨가 9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건물 옥상 광고탑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e-mail]

기아차 하청노동자 고공농성 현장

9일 오전 10시50분께 은수미·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함께 오른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10m 높이 광고판 위는 밑에서 볼 때보다 훨씬 좁았다. 땅 위라면 더위를 식혀준다며 반길 바람이 높은 하늘에선 흉포했다. 잘못 움직이면 미끄러져 떨어질까 두려워 바닥에 몸을 붙이고 엎드렸다. 20m 길이에 두 사람이 앉으면 폭이 꽉 차는 광고판 위에서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이는 이날로 고공농성 29일을 맞은 최정명(45)·한규협(41)씨뿐이었다.

“불법파견은 범죄 행위입니다. 불법파견을 저지른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검찰 소환 한번 안 됐는데, 불법파견을 바로잡으라는 노동자는 손해배상·가압류에 구속까지 됩니다. 밤에 자기 전에 하늘의 별을 보며 생각합니다. 지금이 전근대 무법천지는 아닌지….” 뙤약볕에 까맣게 탄 최정명씨가 말했다.

두 사람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광고판 내부가 아니라 햇볕에 곧잘 펄펄 끓는 광고판 위에서 24시간을 보낸다. 대소변을 봐야 할 때에만 광고판 안으로 숨는다. 땡볕을 피할 그늘이라곤 등산용 우비를 펼쳐놓은 곳뿐이다. “편하게 지내려고 올라온 게 아니”란다. 이들의 건강을 살피러 온 김대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은 “햇볕이 직접 내리쬐는 상황이라 탈수증으로 실신할 수 있다”며 걱정했다.

최정명·한규협, 인권위 옥상 10m 위서
‘불법파견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
햇볕 직접 내리쬐어 탈수증 등 우려
“정규직문제 해결돼야 내려갈 것”

기아차 화성공장 사내하청 노동자인 최씨와 한씨는 “불법파견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6월11일 국가인권위 광고판에 올랐다.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낸 두 사람 모두 지난해 9월 서울지법에서 ‘기아차 정규직 노동자’라고 인정받았다. 두 사람이 8년 넘게 싸운 성과다.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가 다수인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와 회사 쪽은 지난 5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아닌 ‘465명 신규 채용’에 합의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반대에도 노조가 회사와 정규직 전환이 아닌 신규 채용에 합의했다. 법원 판결에 따라 모두 다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려고 올라왔다. 얼마가 걸리든 이 문제가 풀려야 내려갈 수 있다.” 한규협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가 일하는 공정에서 최씨는 120명의 노동자 중 유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다. 기아차를 만들지만 회사가 기아차의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최씨의 ‘불법파견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는 절박하다. 하지만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와 교섭해 합의에 이른 만큼 합의에 불만이 있으면 지부를 통해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최씨 등과 따로 교섭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여러 사업장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1일 국가인권위 앞에서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 전환 쟁취를 위한 비정규직 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김민경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