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등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 조정권고안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조정권고안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사회적 해결’이다. 23일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가 발표한 조정권고안의 핵심은 삼성전자 등의 기부로 설립할 공익법인이 피해자 보상을 맡고 ‘재해 예방 대책’ 마련·실행도 삼성 쪽과 책임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사과 방식도 삼성전자 쪽의 개별·공식 사과뿐 아니라 “노동건강권은 기본적 인권”이라는 ‘노동건강인권 공동선언’을 권고했다. 김지형 조정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겠다고 판단했다”며 ‘사회적 사과·책임·의제’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 보상 대상
조정위는 핵심 쟁점인 보상 대상 노동자와 질병을 삼성전자의 애초 제안보다 넓게 설정했다. 김지형 조정위원장은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산업재해로 의심되는 질환으로 투병 중이거나 사망한 분, 그 가족의 아픔과 어려움을 덜어드리는 방향으로 나누겠다는 게 보상의 원칙”이라고 밝혔다. 이런 원칙 아래 조정위는 정규직·비정규직 여부나 업무 연관성 유무를 엄격하게 따지기보다 ‘당사자의 고통’을 중시했다.
조정위는 보상 대상자를 ‘삼성전자의 반도체 및 엘시디(LCD) 사업장에서의 반도체 및 엘시디 생산 등 작업공정, 관련 시설의 설치·정비 및 수리 등 업무에 2011년 1월1일 이전부터 일하기 시작한 근로자’로 명시했다. 정규직·비정규직을 명시하지 않아 삼성전자 쪽이 난색을 표해온 협력업체 노동자도 보상 대상에 포함될 길이 열렸다.
조정위는 보상 대상 질병을 업무상 연관성이 입증된 정도에 따라 3개 군으로 나눠 넓게 설정했다. 1군은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유방암 등 업무 연관성이 높다고 학술연구 또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인정된 질병이다. 2군은 뇌종양, 유산·불임 같은 생식질환으로 산재로 인정된 적은 없지만 인과성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는 질환이다. 3군은 선천선 기형 등 차세대 질환, 다발성경화증 등 희귀질환, 희귀암, 난소암이다. 업무 연관성이 입증된 적은 없지만 당사자가 받는 고통과 피해가 큰 질병들이다.
이는 백혈병·비호지킨림프종 등 7종의 질병만 보상하겠다고 제시한 삼성전자 쪽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반올림)과 ‘삼성직업병피해자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 등 피해자·가족 쪽의 의견이 더 반영됐다. 다만 반올림이 파악한 직업병 피해자 가운데 유방암·난소암·희귀암 이외의 암도 있어 보상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는 이가 발생할 수 있다.
업무연관성 따라 질병 3개군 나눠
2011년 1월1일 이전에 입사
최소 1년 이상 근무자로 규정
협력업체 노동자도 보상 길 열려
삼성에 기자회견·개별 사과 권고
조정위 “사회 구조적 해결” 강조
■ 보상 기간
보상의 원칙과 기준의 또 다른 축은 ‘기간’이다. 조정위는 ‘2011년 1월1일 이전에 일하기 시작해 최소 1년 이상 일한 노동자’라는 최소한의 재직 기간 요건을 두었다. 퇴직 뒤 질병을 진단받을 때까지 최대 잠복기간도 생식질환 등은 1년, 희귀질환은 5년, 난소암 등은 10년, 백혈병 등은 14년으로 조정위는 제안했다. 조정위가 권고한 재직기간·퇴직 뒤 잠복기간 요건도 삼성전자가 애초 제시한 안보다 폭이 넓다. 하지만 이 기준에 따르면 입사 6개월 만에 재생불량성 빈혈로 숨진 윤슬기씨 등은 보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 재발방지 대책
김지형 조정위원장이 밝힌 ‘재발방지’ 대책 권고안의 원칙은 △지속가능성 △쌍방향성 △균형과 조화다. 조정위는 삼성전자와 공익법인의 역할 모두를 강조했다. 조정위는 삼성전자가 애초 제안한 기존 보건관리 조직에 전문인력을 보강해 화학제품 조사, 진단·치료 지원 등을 하라고 권고했다. 이어 공익법인이 환경·안전·보건·관리 분야 등의 전문가 3인을 옴부즈맨으로 임명해, 삼성전자 사업장을 점검해 개선 방안을 권고하도록 했다.
■ 사과의 방식
조정위는 “사업장에 내재한 건강 유해 인자로 인한 위험에 대해 충분한 관리가 이뤄지지 못한 점을 인정하고” 등의 내용이 담긴 사과문을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기자회견을 열어 읽고, 피해자·가족한테 개별적으로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조정위의 조정권고안에 세 주체가 합의하면, 이들이 공동으로 ‘노동건강인권 선언’을 발표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1회성 사과가 아닌 지속성을 지닌 사회적 약속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