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공공기관에 올해 안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한편 “예전처럼 일단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면 일을 잘하든 못하든 고용이 보장”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며 사실상 ‘쉬운 해고’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6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 한국노총 천막농성장에서 조합원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노동시장 개편 ‘프레임 전쟁’ 점화
정치권에서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바라보는 인식과 해법의 틀, 프레임 전쟁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정규직의 양보가 불가피하다며 임금피크제와 쉬운 해고를 전면에 내건 정부·여당과, 노동시간 단축을 비롯한 경제민주화가 우선이라는 노동계와 야당의 주장이 정면 대립하고 있어서다. 정부 주도 의제를 중심으로 논의하던 노사정위원회가 공전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담화를 통해 노동계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양쪽의 확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7일 박근혜 대통령의 전날 노동개혁 관련 담화에 대해 “노동개혁은 필요하지만 방향이 틀렸다. 정규직 임금을 줄여 청년 일자리를 늘린다는 것은 경제 실패를 정규직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발상”이라며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를 늘리는 데 더 확실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임금피크제 도입과 일자리 창출을 연결짓는 정부 여당의 정책전환을 요구한 것이다.
최재천 새정치연합 정책위의장은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서 그 대안으로 △청년고용할당제 △구직수당제 △청년 일자리 창출 관련 사회적 협약제도 등을 제시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4대 구조개혁 추진에 빠르게 발을 맞추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정치권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고, 질 나쁜 일자리로 내몰려서 신음하고 있는 청년들의 절망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에게 희망의 미래를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도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아르오티시(ROTC) 중앙회 대표단과의 간담회에서 “개혁에는 진통이 따르고 기득권의 반발도 거세지만 당장의 고통이 두려워서 개혁을 뒤로 미루거나 적당히 봉합하고 넘어간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10배, 100배의 고통을 겪게 된다”며 거듭 노동개혁 추진 의사를 밝혔다.
여권 ‘노동개편=청년실업 해소’ 공세
박 대통령 “후손들 고통” 연일 압박 “경제실패 책임 정규직에 떠넘겨”
야당·노동계 ‘정책기조 전환’ 맞서 기업책임 강화·경제민주화 포함
전문가 “개편논의 큰틀 새로짜야” 그러나 노동계는 정부의 이런 논리가 ‘급조된 프레임’이라고 비판한다. 임금피크제로 줄게 될 노동비용을 기업이 곧바로 청년고용에 쓴다는 보장이 없을뿐더러, 실제로도 그렇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또 정부가 애초 임금피크제를 청년실업 해소 수단의 방편으로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도 비판의 근거로 삼는다. 실제 노사정위 논의가 본격화한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노사정위는 물론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등 정부 쪽이 임금피크제 도입이 청년고용을 창출할 것이라는 논리를 제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한 건 한국노총의 비협조로 노사정위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정규직 노조를 개혁 저항세력으로 몰아붙이기 위해서라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는 명칭 자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구도를 조장하려는 의도라고 본다. 이런 비판은 정부 안에서도 나온다. 고용노동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단순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로 볼 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큰 틀의 경제구조에서 파생된 측면이 크다. 이를 단순히 노동시장의 격차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풀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신 노동계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노동시간 단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주 40시간 노동제에서 근로기준법상 최대 12시간의 연장근로만 가능한데도 고용부가 토·일요일 노동은 연장근로가 아니라는 행정해석으로 68시간(40+12+16시간)까지 가능하도록 한 탓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멕시코에 이어 두번째로 긴 장시간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법과 판례에 따라 52시간으로 줄이면 줄어든 시간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당분간 연중 절반은 60시간 체계를 유지하자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겉으론 “산업계에 미칠 충격”을 우려한다지만, 속내는 같은 노동시간이라도 사람을 더 쓸 때 발생하는 기업의 각종 비용 상승을 우려한 탓이다. 결국 기업에는 추가 비용 부담을 주지 않고, 부모세대의 임금을 깎아 자식세대의 일자리를 늘리자는 발상인 셈이다. 전문가들이 노동시장 구조개편 논의의 큰 프레임을 ‘기업 책임 강화’와 ‘경제민주화’로 옮겨야 한다고 보는 배경이기도 하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책임을 기업과 정부도 함께 나눠 져야 하는데, 현재는 노동자들한테만 양보를 요구하다 보니 노동계가 반발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상훈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재벌개혁과 투자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 쪽으로 사회적 대화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편에 노동계가 비판과 투쟁을 넘어 선제적인 프레임 설정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이를테면 정규직 노조가 나서서 고용보험료 인상을 주장하고 이를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청년실업자한테 실업급여를 주자거나 정규직 임금 상승률을 낮추는 대신 해당 재원을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모조리 쓸 수 있는 방안과 같은 사회연대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노 소장은 “전체 노동자의 10%에 불과한 노조가 일정 부분 양보하더라도 나머지 90% 노동자가 함께 싸울 수 있는 방향으로 프레임을 바꿔내야 한다”고 말했다. 전종휘 이세영 기자 symbio@hani.co.kr
박 대통령 “후손들 고통” 연일 압박 “경제실패 책임 정규직에 떠넘겨”
야당·노동계 ‘정책기조 전환’ 맞서 기업책임 강화·경제민주화 포함
전문가 “개편논의 큰틀 새로짜야” 그러나 노동계는 정부의 이런 논리가 ‘급조된 프레임’이라고 비판한다. 임금피크제로 줄게 될 노동비용을 기업이 곧바로 청년고용에 쓴다는 보장이 없을뿐더러, 실제로도 그렇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또 정부가 애초 임금피크제를 청년실업 해소 수단의 방편으로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도 비판의 근거로 삼는다. 실제 노사정위 논의가 본격화한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노사정위는 물론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등 정부 쪽이 임금피크제 도입이 청년고용을 창출할 것이라는 논리를 제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한 건 한국노총의 비협조로 노사정위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정규직 노조를 개혁 저항세력으로 몰아붙이기 위해서라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는 명칭 자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구도를 조장하려는 의도라고 본다. 이런 비판은 정부 안에서도 나온다. 고용노동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단순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로 볼 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큰 틀의 경제구조에서 파생된 측면이 크다. 이를 단순히 노동시장의 격차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풀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신 노동계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노동시간 단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주 40시간 노동제에서 근로기준법상 최대 12시간의 연장근로만 가능한데도 고용부가 토·일요일 노동은 연장근로가 아니라는 행정해석으로 68시간(40+12+16시간)까지 가능하도록 한 탓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멕시코에 이어 두번째로 긴 장시간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법과 판례에 따라 52시간으로 줄이면 줄어든 시간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당분간 연중 절반은 60시간 체계를 유지하자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겉으론 “산업계에 미칠 충격”을 우려한다지만, 속내는 같은 노동시간이라도 사람을 더 쓸 때 발생하는 기업의 각종 비용 상승을 우려한 탓이다. 결국 기업에는 추가 비용 부담을 주지 않고, 부모세대의 임금을 깎아 자식세대의 일자리를 늘리자는 발상인 셈이다. 전문가들이 노동시장 구조개편 논의의 큰 프레임을 ‘기업 책임 강화’와 ‘경제민주화’로 옮겨야 한다고 보는 배경이기도 하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책임을 기업과 정부도 함께 나눠 져야 하는데, 현재는 노동자들한테만 양보를 요구하다 보니 노동계가 반발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상훈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재벌개혁과 투자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 쪽으로 사회적 대화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편에 노동계가 비판과 투쟁을 넘어 선제적인 프레임 설정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이를테면 정규직 노조가 나서서 고용보험료 인상을 주장하고 이를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청년실업자한테 실업급여를 주자거나 정규직 임금 상승률을 낮추는 대신 해당 재원을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모조리 쓸 수 있는 방안과 같은 사회연대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노 소장은 “전체 노동자의 10%에 불과한 노조가 일정 부분 양보하더라도 나머지 90% 노동자가 함께 싸울 수 있는 방향으로 프레임을 바꿔내야 한다”고 말했다. 전종휘 이세영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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