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강조하자 관련부처 장차관들이 앞다투어 거친 말까지 동원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미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논의하던 노사정위가 결렬된 지난 4월 ‘독자 행보’를 선언했습니다. 그런 정부가 ‘노사정 합의를 통한 노동시장 구조개편’으로 갑자기 태도를 바꿔 음으로 양으로 한국노총을 압박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 탓에 모든 사람들이 한국노총의 입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한국노총 출입기자인 ‘죄’로 요즘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 복귀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 담당 언론노동자 김민경입니다. 김동만 위원장 등 지도부는 ‘복귀’ 쪽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만, ‘정부의 들러리를 설 수 없다’는 공공연맹·금속노련·화학노련 등 산별연맹들의 반발도 만만찮습니다.
노동 전문가들도 재계 입장을 반영한 정부가 의제와 시한을 못박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노총이 얻을 게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공익위원들마저 친정부·친기업적 성향을 보이는 ‘기울어진 운동장’ 노사정위의 구성을 보면 더욱 그렇죠. 특히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편의 고갱이로 보는 ‘해고·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명확화 가이드라인’은 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고 일정 조건만 갖추면 노동조합 등의 동의 없이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노동계의 반발이 매우 큽니다. 그런데 왜 한국노총은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강행하면 총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하고서도, 두 가지를 논의에서 뺀다는 공식적인 보장도 없이 갈대처럼 흔들리며 노사정위 복귀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걸까요?
한국 노동계를 양분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조합원 62만6035명)과 한국노총(81만9755명)은 노동현안을 해결하는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민주노총이 정부와의 대화와 타협보다 투쟁을 강조한다면, 한국노총은 투쟁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선호하죠.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이 이미 2007년에 “민주노총은 계속 투쟁주의로 치닫고 한국노총은 개혁을 표방하며 지나치게 실리주의에 집착하다 보니 양대 노총의 연대나 동맹은 희박해지고 갈등만 짙어진다”고 지적했을 정도니까요.
정부 주도로 만들어졌고 오랫동안 정부에 협조했던 한국노총은 투쟁보다는 대화·타협 경험이 많습니다. 한국노총의 전신은 1946년 출범한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으로, 1948년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로 개편돼 이승만 정부의 지원 아래 성장했습니다. 1994년 한국노총 혁신보고서는 이후 한국노총이 “집권여당과의 유착으로 집행부가 여당 국회의원으로 진출하고 4·13 호헌을 지지하는 등 정부 정책에 일방적으로 협조하는 편향적 자세를 취했다”고 반성했습니다. ‘노조 민주화’ 투쟁을 바탕으로 한 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 전후로 한국노총도 ‘어용노조’, ‘정부 들러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혁신보고서를 내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투쟁보다 타협을 해결 수단으로 사용하다 보니 정부와의 교섭은 피할 수 없습니다. 김동만 위원장도 “노사정위에 들어가서 공공부문 임금피크제 등 논의할 수 있는 현안이 많다”며 지난 18일 노사정위 복귀를 반대하며 한국노총을 점거한 조합원들을 설득하기도 했으니까요. 대화와 타협은 필요합니다. 싸워야 할 때는 투쟁도 유용하지요. 그러나 대화와 타협만 있다면 정부가 지금처럼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밀어붙일 땐 끌려갈 수밖에 없고, 투쟁만 있다면 지금의 노동계 실력으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노동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고, 여야 국회의원 공천에 대한 관심이 높은 점도 정부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로 지적됩니다. 지난해 한국노총 임원선거에 나온 서재수 사무총장 후보는 <매일노동뉴스>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한국노총이 금배지 하나 달려고 활발하게 싸우고 있다”며 “정치에 개입하다 보니까 정부의 시녀가 되고 꼭두각시 노릇만 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정부발 노동시장 구조개편 압력이 거세지는 지금도 “누구누구가 내년 선거 때 국회의원 하고 싶은 게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김동만 위원장이 지난해 1월 당선 직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한 얘기가 있습니다. “정부가 진정성 있는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끌고 간다. 그간 한국노총이 정부 정책에 들러리 선 측면이 있지만 이젠 안 한다.” 그 약속을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김민경 사회정책부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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