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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연차 쓰려면 대타 구해와”…구로단지의 ‘헬조선’

등록 2015-10-28 20:08수정 2015-11-04 15:10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구로디지털단지 노동환경 실태조사
“허기지고 지친/우리 공돌이 공순이들이/싸구려 상품을 샘나게 찍어두며/300원어치 순대 한접시로 허기를 달래고/이리 기웃 저리 기웃/구경만 하다가/허탈하게 귀가길로 발길을 돌린다.”(1984년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중 ‘가리봉 시장’)

“규정은 아침 9시 출근, 저녁 6시 퇴근인데요. 거의 매일 2시간씩 잔업을 해요. 잔업 할건지 물어보지도 않아요. 한달 기본급이 100만원부터 시작이에요. 잔업수당을 붙여도 130만원 밖에 안돼요. 최저임금 위반 맞죠? 연차휴가 같은건 생각도 못해봤어요.”(2015년 10월 구로디지털단지 봉제공장 직원)

1965년 서울 구로구 구로동·금천구 가산동 198만㎡에 조성된 구로공단은 노동집약형 압축성장 시대의 상징이었다. 열악한 작업환경과 근로조건에 시달리던 구로공단 ‘공돌이’ ‘공순이’들에게 근로기준법은 먼나라 이야기였다. 이들의 삶은 박노해 작가의 시를 비롯해 이문열 작가의 ‘구로 아리랑’(1987년), 공지영 작가의 ‘동트는 새벽’(1988년), 신경숙 작가의 ‘외딴 방’(1999년) 등에 녹아들었다.

옛 구로공단, 외관만 ‘첨단’ 변모
노동자 24%가 “최저임금도 안돼”
10명중 4명 “연차휴가 아예 없어”
연차쓰면 월급서 공제하는 곳도

민주노총 “근로기준법 위반
고용부가 사실상 방치” 비판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그런 구로공단은 2000년 한국산업단지공단의 벤처센터 건립을 시작으로 첨단 도시형 산업단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뀌었고, 봉제·섬유·전자 등 노동집약적 제조업 위주였던 입주기업도 다변화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자료를 보면, 2013년 말 기준 이곳에 입주한 가동업체 9649곳 가운데 비제조업이 6917곳에 이를 정도다. 옛 구로공단을 가득 메우고 있는 초고층 아파트형 공장에는 각종 벤처기업과 물류 사무실, 콜센터 등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공단의 화려해진 스카이라인처럼 공돌이 공순이의 삶도 달라졌을까? 민주노총 서울 남부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가 지난 상반기 이곳 노동자 522명을 대상으로 벌인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의 24.2%(114명)는 최저임금 기준에 못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최저임금은 월급 기준 116만6220원이다. 이 단지에 입주한 한 콜센터 직원은 “한달에 116만원을 받아요. 근로계약서에는 분명히 9시30분 출근이라고 돼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앞으론 9시까지 안 오면 지각처리한대요. 지각 3회 이상이면 인사고과 반영한다고 협박까지 하고요”라고 신고했다. 단지 안 편의점에서 일한다는 한 노동자도 “처음 근무할 땐 시급이 4700원에서 5000원이에요. 6개월 지나면 100원 올려줘요. 주말에 일해도 휴일수당도 없고요. 유급휴일도 없어요. 처음 들어갈 때 근로계약서도 안썼어요”라고 했다.

연차휴가도 그림의 떡이었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522명 가운데 연차휴가를 제대로 쓰고 있다는 비율은 36.1%(173명)에 불과했다. “연차휴가가 아예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37.0%(177명)나 됐다. 콜센터에서 일한다는 또다른 노동자는 “연차휴가를 못쓰게 해요. 연차휴가 쓰려면 제 일을 대신할 사람 앉혀놓고 가래요. 그리고 연차휴가 쓰면 이틀치 월급을 공제한대요. 이러면 연차휴가가 아닌거잖아요”라고 말했다.

‘노동자의 미래’는 28일 오전 11시 고용노동부 서울관악지청 앞에서 이같은 사례를 발표하며 “더 이상 근로기준법 위반을 방관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 단체 이규철 조직위원장은 “중소기업 사업주들은 열악한 사업 환경을 핑계로 근로기준법 위반을 마치 생계형 범죄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며 “각 지방 노동청은 사업주들의 일상적인 근로기준법 위반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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