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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동의투표 통과 못해도…관리규정에 불과하다며…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속출

등록 2015-11-18 16:40

고용노동부가 ‘취업규칙 변경 기준 완화’에 대한 논의를 공식화한 가운데, 이미 노동시장에서는 기준과 절차를 지키지 않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속출하고 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근로조건을 결정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의 대원칙(노사대등결정의 원칙)이 허물어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18일 민주노총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사례 폭로 증언대회에서는 최근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도록 최업규칙을 변경한 서울대병원 등의 사례가 발표됐다. 먼저 서울대병원은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지 못해 부결된 취업규칙 변경을 이사회가 밀어붙인 경우다. 서울대병원은 10월20일~27일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전직원 투표를 실시했다. 찬성률은 28.59%로 노동자 전체 과반의 동의를 얻는 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서울대병원 이사회는 같은달 29일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행했다. 임금피크제는 불이익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우지영 공공운수노조 서울대분회 사무장은 “임금피크제 도입이 불이익변경이 아니라면 애초에 투표를 실시할 이유도 없지 않았느냐”며 “취업규칙을 불이익 변경할 땐 전직원 과반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을 명백히 위반한 사례”라고 말했다.

전국 국립대병원에서 비슷한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경북대병원도 10월20~27일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투표를 실시했다. 의견수렴 마지막 날까지 과반의 동의를 얻지 못하자, 이사회가 예정된 10월30일까지 투표를 임의로 연장했다. 이사회는 투표 결과 54.6% 동의를 받았다며, 임금피크제 도입을 뼈대로 한 취업규칙 변경안을 가결시켰다. 투표가 연장된 3일 동안 각 부서장이 나서서 동의투표를 노골적으로 강요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또 전남대병원은 서면 이사회를 통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안을 추진했다고 한다. 모두 근로기준법 위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다.

취업규칙이란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지켜야할 규칙이나 임금·노동시간, 기타 노동조건을 구체적으로 정한 규칙이다. 이를 노동자들한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근로기준법은 과반수 이상 노동자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이다.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는 취업규칙 변경에서 노동자의 동의가 필요한 ‘불이익변경’의 기준을 완화하겠다며, 지침을 새로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동계는 사용자들이 마음대로 취업규칙을 바꿔 노동조건이 열악해질 우려가 있다며, 지침 마련에 반대하고 있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을 피하기 위해 별도 규정을 마련해 우회로를 택한 사례도 있었다. 경상북도 교육청은 학교별로 규정돼 있던 취업규칙을 통합·정리한다며 ‘교육실무직원 관리규정’(관리규정)을 신설했다. 관리규정 안에는 교육청 선하 학교나 기관에 교육공무직원에 대한 채용·평가·징계·임금·해고 등이 규정돼 있다. 특히 관리규정 안에는 ‘근무성적 평가결과 3번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은 경우’를 해고 사유로 규정했다.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를 도입한 ‘불이익변경’에 해당하지만, 경북 교육청은 “관리규정을 새로 작성한 것으로 취업규칙 변경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밖에 “신규 채용자에게만 적용하면 되지 않느냐”며 근로자 동의없이 취업규칙을 불이익변경한 경우도 있었다. 기업신용인증 전문업체인 나이스디앤비는 호봉제를 폐지하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노동자 과반수가 조합원으로 가입한 노동조합이 명확하게 반대입장을 밝혔지만, 사용자 쪽은 여전히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절차를 위반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더라도 장래에 회사에 입사하는 신규 노동자들한테는 적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이밖에도 한국화학연구원, 국가핵융합연구소,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에서는 노동조합을 배제하고 개별 동의 서명을 강요해 취업규칙을 불이익변경했으며, 동의 투표에서 과반을 넘지 못했지만 기간을 연장하거나 2차 투표를 실시해 과반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등 사례를 소개하며, 이들 기관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금지원칙에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권영국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공동본부장(변호사)은 “정부가 취업규칙 변경의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분명한 시그널을 줬기 때문에 최근 들어 이같은 일방적인 취업규칙 변경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며 “사용자와 노동자가 근로조건에 대해 대등하게 협의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의 대원칙에 따라 이같은 취업규칙은 무효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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