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노동

정부 ‘노동개편’ 강행 뜻…노동계 ‘쉬운 해고·임금삭감’ 우려

등록 2015-12-30 19:39수정 2015-12-30 22:29

한국노총 노조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고용노동부의 일반해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발표를 규탄하는 뜻으로 함성을 지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국노총 노조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고용노동부의 일반해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발표를 규탄하는 뜻으로 함성을 지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저성과 해고·취업규칙 변경’ 논란

정부 “노사 모두 이익” 밝히지만
전문가 “노동자 책임만 묻고
사쪽 인사관리 잘못 외면
회사 맘대로 임금체계 변경도 가능”
노쪽 반발로 논의 장기화 가능성
정부가 30일 발표한 ‘저성과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정부 지침(양대 지침) 정부안을 놓고 노동계 안팎의 진통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정부가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발표를 강행한 것은 노동개편 관련 5대 법안의 연내 국회 통과가 사실상 불발된 상황에서, ‘노동시장 개편’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양대 지침 논의라도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날 공개된 정부안이 ‘쉬운 해고’, ‘쉬운 임금삭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노동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실패하면서, 양대 지침 논의 자체도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날 정부는 노동계 비판을 고려해 양대 지침이 “노사 양쪽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현행법과 기존 대법원 판례를 종합한 지침이어서 노사 한쪽에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없다는 논리다. 고용노동부 정지원 근로기준정책관은 “지침을 통해 노동자는 판례와 법률에 따른 절차를 요구할 수 있고, 사용자도 객관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다”며 “그간 법 규정과 판례의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아 노동현장의 혼란이 컸는데, 지침을 통해 분쟁 가능성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공개된 양대 지침은 업무성과 부진을 이유로 한 통상해고(저성과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종합하는 수준으로 제시됐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사평가, 교육훈련·배치전환 기회 제공 등 저성과 해고를 하기 위한 요건과 노동자 과반의 동의 없이 취업규칙 변경을 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기준 등은 모두 대법원 판례를 충실히 정리한 것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지만 연세대 교수(경영학)는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에 관해 그간 (쉬운 해고라는 등) 오해가 많았는데, 정부안이 기존 판례와 실정법에 충실하게 제시된 만큼 그런 우려가 증폭되지는 않을 것 같다”며 “특히 통상해고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은 사회적 공감대 확산에 기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정부 설명에 동조했다.

그러나 이런 정부 설명에도 불구하고 양대 지침에 대한 우려는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지침 내용이 사실상 ‘어떻게 하면 정당하게 해고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지침을 보면) 해고가 인정되지 않은 사례는 없고 어떤 경우에 해고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정리돼 있다”며 “잘못된 인사관리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은 묻지 않고 노동자의 부적응과 업무능력을 해고 사유로만 규정하면, 책임이 노동자한테 전가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지침의 ‘눈높이’가 해고를 당하는 노동자보다 해고를 하는 사용자에게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다.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에 따라 노동조건이 널뛰기를 할 가능성도 높다. 우리나라는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취업규칙의 위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노무법인 참터의 유성규 노무사는 “취업규칙 변경 기준이 완화될 경우 사용자는 휴식시간·급여조건·임금체계·노동복지 사항 등을 사실상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며 “노동자 입장에서는 경기 변화에 따라 노동조건 자체가 출렁거리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침은 법률·시행령·시행규칙 아래 단계의 규제이지만, 현장에서는 상당한 ‘행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노동자는 부당노동행위를 당할 경우 고용노동부 산하 각 지방노동청에 진정을 넣으면서 구제 절차를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정부 지침에 제시된 요건을 형식적으로 충족시킨 뒤 취업규칙이 변경된 경우, 각 지방노동청 근로감독관들은 이를 정당하다고 판정할 가능성이 높다. 근로감독관은 고용부 소속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부당해고 여부를 판단하는 노동위원회에도 근로감독관이 파견된다. 또 고용부 관료 출신이 위원장을 맡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위 지침이지만,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민주노총의 박진승 노무사는 “지방노동청에서 진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노동자들은 개별적으로 소송을 거는 수밖에 없는데, 소송에 필요한 시간과 돈을 감당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사용자들이 정부 지침을 계기 삼아 저성과 해고를 본격화하고 임금체계 등 취업규칙의 일방적 변경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다. 정부가 쉬운 해고 등을 눈감아주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권영국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본부장(변호사)은 “서울대병원의 임금피크제 도입 과정 등에서 보듯 노동자한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사례가 이미 많은 사업장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이번 지침은 사용자에게 노동법에 규정된 제재를 피하는 우회로를 뚫어준 셈”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례가 축적될 경우 대법원 판례의 기준 역시 후퇴할 가능성도 있다. 유성규 노무사는 “대법원 판례는 개별 사안에 대한 판단인데 정부 지침은 이를 일반화해 형식적 요건인 것처럼 바꿔놨다”며 “노동시장에서 우위에 있는 사용자들이 저성과 해고 등을 남발할 경우 사회 일반의 관행과 상식이 후퇴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사회통념’에 대한 판례 기준 자체를 후퇴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