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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꿔다 놓은 노사정 자루’는 누구 책임일까요?

등록 2016-01-22 19:24수정 2016-01-22 21:20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이 공간에선 처음 인사드립니다. 노동을 맡고 있는 전종휘입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변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투쟁이니 단식이니 분신·고공농성·수배·구속 같은 살벌한 20세기적 언어가 지배하는 노동판에 머물다 보니 이 칼럼처럼 선도적인 21세기적 공간에 접근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의 낡은 감성을 갈고닦아 앞으론 자주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지난 19일 결국 파탄 난 ‘9·15 노사정합의’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1기 노사정합의 이후 17년 만의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칭송을 받은 이 합의는 왜 깨졌을까요? 저마다 생각이 다를 테지만, 저는 오래전부터 예고된 결말이라고 봅니다.

애초부터 한국 사회는 사회적 합의를 이룰 토대가 매우 취약합니다. 사회적 합의를 하려면 각 집단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조직이 있고, 그 조직이 다른 조직과 맺은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 지도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노동계를 대표해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 한국노총은 전체 노동자의 4.6%가량을 대표하는 데 그치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보다 대표성이 더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인 10.3%로, 노동자 열에 아홉의 목소리를 담아낼 그릇은 없는 나라입니다. 게다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각 주체들 사이에 신뢰관계가 매우 취약합니다. 노-사-정이 서로 믿지 않으면서 큰 약속을 맺긴 어렵습니다. 사회적 대화가 늘 살얼음판을 걸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물론 전반적인 노동의 질서를 재정비할 사회적 노력은 필요한 시점입니다. 국가경제가 본격적인 저성장기에 접어들고 앞으로는 3%대 경제성장률 방어도 쉽지 않아 보이는 상황입니다. 서비스업 중심으로의 산업구조 변동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요즘 각종 스마트폰 앱을 통한 배달 노동자들 사례에서 보듯 기존의 노동법 체계로는 보호하기 힘든 유형의 노동자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구조조정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내쫓기는 일도 잦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법제도 정비를 두고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회 세력들의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하는 게 정부와 정치가 할 일이지요.

하지만 정부는 노사정위에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하지 않았습니다. 어떨 땐 ‘재계의 대변인’ 같았습니다. 노사정위 논의가 시작되던 2014년 가을부터 기획재정부가 정규직 과보호론을 들고나왔습니다. 정부의 노동개혁이 기존 노동자에 대한 법적 보호를 깨뜨리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선전포고한 셈입니다. 그 결과는 지난해 노사정이 맺은 합의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노동계는 고용안정성을 포기하고 많은 의무를 져야 하는 반면, 재계는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을 뿐 잃을 것은 눈에 띄지 않는 내용입니다.

한국노총이 지난 19일 끝내 ‘합의 파기’의 방아쇠를 당긴 데는 정부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식 추진 행태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한을 정해놓고 밀어붙였습니다. 9월15일 합의 다음날 노동계가 반발하는 내용의 기간제법·파견법 등 노동5법 개정안을 곧바로 발의하더니 “(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관련) 양대 지침 발표는 해를 넘기면 안 된다”며 12월30일 정부 초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습니다. 대화의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라 보긴 어렵습니다. 노사정위는 마치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았습니다. 끝내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20일 오후부터 다음날까지 한나절반 동안 현장의견 수렴 명목으로 3개 사업장을 방문하더니 노사정 대화 파탄 사흘 만인 22일 양대 지침 시행을 전격 발표했습니다.

전종휘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
전종휘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
대화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우격다짐뿐입니다. 당분간 노동계와 재계, 정부가 힘 대결을 벌이며 치고받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전종휘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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