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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퇴근 후 카톡 금지법’ 가능할까요?

등록 2016-06-24 21:27수정 2016-06-24 21:45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친절한 기자들’ 기사를 쭉 찾아보니 10개 중 8개는 ‘안녕하세요’로 시작되더군요. 우리 인사말이 참 빈약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기자들의 상상력도 그 못지않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저라고 뭐 다르겠습니까?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낭랑하고 싹싹한 사회부 기자 정은주입니다.

톡톡 튀는 감성이 사라진 이유를 저는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사라져서가 아닐까 분석합니다. 항아리를 비워야 싹싹 씻어서 새 물만 찰랑찰랑 채울 수 있는데 말이죠. 하루 종일 물을 퍼나르지만 옛 물과 뒤섞여서 뻔한 일상을 견디듯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22일 신경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퇴근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다는 소식이 엄청 반가웠습니다. 회사가 퇴근 후에 휴대전화 문자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메일 등으로 업무 지시를 내려 노동자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인데요. 퇴근 후 상사의 카톡 업무지시에서 해방되는 게 정말 가능할까요?

퇴근 후 업무 메시지를 법률로 완전 금지한 나라는 아직 없는 듯합니다. 2012년 독일 금속노조가 정부에 입법 제안한 ‘안티스트레스법안’이 유사하지만, 메르켈 총리가 회의적이라 법안 제정이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최근엔 독일 좌파연합이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근로기준법에 명시하자는 안건을 연방의회에 제출했다는데, 역시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노사 합의로 실현한 사례는 있습니다. 2014년 4월, 프랑스 경영자총연합회와 노동조합은 퇴근 후(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원칙적으로 회사 이메일·메신저 발송을 금지하는 협정을 맺었습니다. 이 협정은 근로시간이 35시간보다 길고, 근로일수로 월급을 받는 정보기술(IT) 노동자들로 한정해 적용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독일 자동차회사인 폴크스바겐은 2011년 단체협약에 노동자의 휴식시간에 업무상 연락을 하지 못하도록 못박았습니다. 회사 이메일 서버는 근로시간에만 작동합니다. 노동자는 오후 6시15분부터 다음날 오전 7시, 그리고 주말에는 회사 이메일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사가 합의로 단체협약에 ‘퇴근 후 업무 메시지 금지’ 조항을 과연 넣을 수 있을까요? 노동 분야를 맡은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은 초짜지만, 제 감으로도 어림 반 푼어치도 없어 보입니다. 자, 대안을 찾아봅시다. 금지할 수 없다면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아 보상이라도 받을 수는 있을까요?

퇴근 후에도 회사 업무와 연결된 형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사용자의 업무 메시지를 받고 스마트기기로 긴 시간(30분이나 1시간) 집중해 일하는 경우입니다. ②회사에서 온 전화를 받거나 이메일을 확인할 때가 있습니다. ③집에서 쉬지만 회사에서 업무를 지시할 가능성이 있어 휴대전화를 켜놓는 경우입니다.

①은 초과근로시간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말합니다. 근로기준법 50조를 펼쳐보면,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해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제50조 3항)고 돼 있기 때문입니다. 출근해 작업을 준비하는 시간도 근로시간에 포함되는 이유입니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근로자가 맘대로 제공한 게 아니라 사용자의 명확한 지시로 일했기에 근로시간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②는 국내에서는 논의가 없지만 독일에서는 두 학설이 다투고 있습니다. 이메일 열람이나 짧은 통화는 휴가시간을 해치지 않아 업무수행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와, 시간이 길든 짧든 휴식이 중단됐다고 봐야 한다는 견해가 맞섭니다.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습니다.

③은 새로운 노동 형태입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법률상 ‘호출대기’라는 용어를 만들어 ‘대기시간’과 구분해 사용합니다. 대기시간은 사용자가 지정한 곳에 머물며 기다려야 하지만, 호출대기는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지만 휴대전화를 켜놓아야 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두 나라 모두 호출대기를 원칙적으로 휴식시간으로 보지만 실제 업무활동을 하면 근로시간으로 인정합니다. 또 근로계약이나 단체협약으로 호출대기를 보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호출대기 1시간에 시급의 30%를 지급하는 식입니다.

정은주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
정은주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하지 못한다’는 말이 떠오르는군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쟁취하든,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아 보상을 받든, 저 울려대는 ‘카톡 카톡’에서 해방될 길을 함께 찾아봅시다. 참, 저는 오늘 휴무일입니다.

정은주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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