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경남 거제시 장평동의 한 백화점 앞에서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저지, 자구안 철폐 결의대회’를 열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설비지원 부문 자회사 분사 관련, 미신청 팀장님께 회사 방침을 최후통첩합니다. 오늘 오전 11시까지 신청서 제출을 하지 않을 경우, 1. 팀장 보임 즉시 해제 2. 기술교육원 교육 명령 3. 교육기간 및 교육. 이후 계획은 저도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전환배치는 어렵고 대기발령 및 무급휴가 등이 예상됩니다. 잘 판단하시고 오늘 오전 11시까지 개별 의사를 연락 바랍니다.”
지난 20일 현대중공업이 분사에 반대하는 팀장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현대중은 다음날인 21일 분사에 반대하는 팀장들을 모두 대기발령시켰다. 이 문자를 받은 한 팀장은 “매일 면담을 통해 회유하고 있어 사실상 협박에 가깝다”며 “분사 이후 일정 임금을 보장해준다지만, 일단 분사하면 고용을 보장해줄지 알 수 없어 동의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조선업 노동자에게 밀려온 구조조정의 파고가 이제 하청노동자들을 넘어 원청업체의 정규직도 덮치고 있다.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는 이른바 ‘자구안’을 통해 분사와 명예퇴직 등으로 대규모 인력 감축에 돌입했다. 노조는 파업 결의 등으로 강력반발하며, 정부 쪽에 노조와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 ‘무노조’ 삼성중공업, 28년 만에 첫 집회 지난 23일 저녁 경남 거제의 번화가인 장평동의 백화점 앞에서 ‘파업가’가 울려 퍼졌다. 삼성중 노동자협의회(노협)가 연 ‘구조조정 저지, 자구안 철폐 결의대회’다. 1988년 삼성중 노협이 결성된 이래, 조선소 밖에서 집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자 900여명이 작업복을 입고 참가했다. 변성준 노협 위원장은 집회에서 “우리의 투쟁은 우리의 생존권과 가족의 미래, 거제의 경제를 지키는 투쟁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번달 초까지 노협은 회사와 함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수주를 위해 경영진과 함께 선주들을 만나기도 했고, 지난달 4일 ‘기본급 동결’ 입장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8일 회사 쪽이 “2018년까지 인력의 30~40%(5400명)를 축소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자구안을 발표하면서 ‘투쟁 모드’로 돌아섰다. 회사 쪽은 올해 안으로 1500명을 명퇴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신청을 받고 있다. 노협은 29일에는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 ‘자구안’ 발표 뒤 ‘인력감축’ 칼바람 현대중공업은 7~8월 중으로 설비·지원 등 비생산 분야를 분사시켜 1000명 정도를 내보낸다는 계획이다. 명퇴 신청도 받는 중이다. 현대중 노조의 한 관계자는 “회사 쪽에서 최근에 명퇴한 노동자들을 다시 계약직으로 채용했다”고 전했다. 대우조선해양은 특수선 분야를 별도 법인으로 분사하고 2020년까지 2000여명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노조들은 “2014년부터 조선산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해왔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구조조정뿐이었다”며 “정부와 채권단 위주의 구조조정에서 노조는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사 9곳의 정규직 노조들로 구성된 조선업종연대회의는 ‘일방적 구조조정 중단, 산업 차원 노-정 대화, 개별 회사 차원 채권단과의 직접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대우조선은 지난 14일, 삼성중은 28일 파업을 결의했다. 현대중도 7월초에 파업 찬반투표를 한다. 다음달엔 공동 상경투쟁과 공동파업도 예정돼 있다. 대우조선 노조 조현우 기획실장은 “정부가 노조의 대화 요구는 거부하면서 지원을 빌미로 파업을 하지 못하도록 협박하고 있다”며 “하루속히 정부는 대화에 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제/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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