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정양립 문화조성(휴가사용) 캠페인 시안. 자료 고용노동부
“김대리 휴가신청서 올렸네? 휴가 가서 뭐하게? 좋은데 가려고?”
건설회사에 다니는 김아무개(34)씨는 상사에게 휴가를 신청할 때마다 질문을 받는다. 김씨는 “집에 일이 있거나 아플 땐 할 말이 있지만, 그냥 쉬고 싶을 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내 연차, 내가 쓰는데 휴가사유는 왜 적어야 하냐”고 투덜댔다. 경제 5단체가 직장인 5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직장인 31.7%가 휴가 사유를 실제와 다르게 적어낸 경험이 있으며, 휴가 사유를 적지 않는 것이 휴가 이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한 직장인이 과반(54.2%)을 넘겼다.
앞으로 이런 ‘눈치 보기 휴가신청’ 등 일·가정 양립을 방해하는 조직문화를 없애기 위해 민·관이 함께 나서기로 했다.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 등 정부부처와 한국경영자총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 등은 30일 2차 일·가정 양립 민관협의회를 열어 △휴가사유 묻지 말기 △근무시간 외 전화·문자·카톡 말기 △일·가족 양립에 저해되는 말 쓰지 말기 △시이오(CEO)가 함께 일·가정 양립 실천하기 등의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먼저 휴일·퇴근 뒤 메시지나 통화 등으로 업무지시를 해 ‘스마트폰 감옥’을 만들고, 노동자들의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해치는 조직문화를 없애기 위해, 협의회는 기관 차원의 공동 응답 문자를 개발해 활용하기로 했다. 퇴근 뒤 업무지시는 해선 안 되는 것이 당연함에도 개별적으로 응대할 경우엔 무례하게 비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고용부가 낸 예시는 “근무시간 이외의 업무 연락에 대해서는 내부규정상 부득이 응답할 수 없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라며, 근무시간에 다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다.
또 일·가정 양립을 ‘저해해하는 말’과 ‘권장하는 말’을 선정하는 이벤트를 공모해 국민인식을 환기시키기로 했다. 권장어로는 퇴근할 때 굳이 인사를 하도록 해 이른 퇴근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퇴근할 때 인사하지 맙시다”나 상사가 부하에게 휴가를 권장하는 “휴가 좀 써” 등이다. 저해하는 말로는 퇴근하려는 직원에게 “저녁만 먹고 가”, 저녁 늦게 업무를 주면서 “내일 아침에 보자”, 과중한 업무를 주면서 “김대리, 승진해야지” 등이 꼽혔다.
이날 협의회에서는 또 전환형 시간선택제, 남성육아휴직, 육아기 대체인력채용 활성화, 직장어린이집 설치 확대, 가족친화인증기업 확대 등 정책을 확산시킬 수 있는 여러 방안이 논의됐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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