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13만 조선소 하청 노동자 고용보장 촉구, 노조가입운동 선포' 조선소 하청노동자 공동기자회견이 열려 참석자들이 대량해고, 임금삭감에 고통받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를 표현하는 거리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조선업 불황과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임금체불에 항의했다가 입사가 거부됐던 적이 있는 조선 하청업체 노동자가 숨진채 발견됐다. 노동·시민단체에서는 이 노동자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이유로 퇴사를 종용받은 게 배경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관련 업체들은 부인하고 있다.
경남 거제경찰서와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하노위)의 설명을 종합하면,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ㅅ기업 노동자 김아무개(42)씨가 11일 오전 8시께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안에서 목을 매 숨진채 발견됐다. 김씨는 근무일이 아닌 10일 조선소에 들어왔고, 이날 오후 가족에게 “딸을 잘 부탁한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유족과 ㅅ기업 관계자 등을 불러 정확한 사망원인을 수사하고 있다.
하노위는 김씨의 자살에 원청이 관리하는 ‘하청업체 블랙리스트’가 영향을 미친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 5월 예전에 근무하던 회사(대우조선의 다른 하청업체)가 임금이 체불된 상태에서 폐업하자 임금을 달라며 항의한 적이 있다. 이후 삼성중공업의 하청업체에 일자리를 구해 일을 하려 했으나 업체 쪽에서 “근무에 필수적인 조선소 출입증 발급이 안돼 일자리를 줄 수가 없다”고 입사를 거부했다. 블랙리스트는 원청 차원에서 임금체불 항의, 산재신청 등 회사 쪽에서 원하지 않은 행동을 한 직원들을 모아놓은 명단으로 알려져있다.
김씨는 지난달부터 현재 ㅅ기업에 일자리를 구해 근무했는데, 하노위는 “대우조선해양이 ㅅ기업에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을 내보낼 것을 종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노위 관계자는 “김씨의 동료와 가족 등의 말을 들어보면 원청이 채용 일주일 뒤 김씨를 내보낼 것을 ㅅ기업 대표에 종용했으나 ㅅ기업 대표가 ‘이미 뽑은 사람을 내보낼 수 없다’고 해 근무를 하고 있었다”며 “하청업체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당시 김씨와 함께 항의했던 사람 가운데 같은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도 이날 성명을 내 “블랙리스트는 취업의 기회와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으로 엄중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며 “이미 취업한 고인을 해고하도록 압박했다는 의혹을 조사해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의 책임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과 ㅅ기업에서는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와 퇴사종용 사실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원청에서는 사내업체가 폐업을 하면 다른 업체에서 고용승계를 하도록 유도를 해왔다. 이 과정에서 명단을 만들어 공유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밝혔고,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회사협의회 관계자도 “취업방해로 처벌받을 일 있나.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주장했다. ㅅ기업 관계자는 “김씨는 특A급 기술자였고, 지난 8일에도 향후 있을 작업을 위해 서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며 “회사가 퇴사를 종용한 사실도 없고, 회사문제로 김씨가 심적 압박을 받은 정황도 없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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