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청소 용역 노동자들
임금협상 위해 민주노총 가입하자
용역업체 “민주노총 안된다” 접촉 막아
원청 세브란스병원 직원들도 동원해
임금협상 위해 민주노총 가입하자
용역업체 “민주노총 안된다” 접촉 막아
원청 세브란스병원 직원들도 동원해
12일 오전 8시30분 서울 신촌동 연세의료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지하 주차장에 딸린 여성 청소노동자 휴게실. 흰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병원 보안요원 10여명이 문앞을 막고 섰다. 9시부터 시작되는 휴게시간에 맞춰 조합원들을 만나러 온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김윤수 조직부장은 “조합원들을 만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노조 상근자 3명과 동행한 기자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 보안요원 한 명이 따라 붙었다. “왜 따라오냐”고 묻자 이 보안요원은 “민주노총에서 온 것 아니냐. 어디로 갈지 몰라서 따라왔다”고 말했다. 병원 밖까지 지부 상근자와 기자를 따라다니다 “경찰을 부르겠다”고 항의하자 그제서야 ‘미행’을 멈췄다. 지난 8일에도 민주노총 지부 상근자들이 조합원 간담회와 유인물을 나눠주기 위해 휴게실을 찾았으나 병원 보안요원과 총무팀 직원, ㅌ업체 직원 10여명이 휴게실 앞을 통제했다.
이런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병원 용역업체인 ㅌ업체 소속노동자 가운데 일부가 기존의 기업별 노조를 탈퇴하고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 가입하고, 가입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병원 청소노동자 장아무개(56)씨는 “노동조합 하겠다고 했더니 보안요원 동원해 사람도 못 만나게 막는걸 보면 5공 때나 다름 없는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병원 청소노동자들은 한달에 휴일이 단 이틀에 불과했고, 새벽 6시에 업무를 시작해 오후 4시까지 일을 했다. 몇 년 째 임금인상 없이 최저임금이 곧 임금이어서 한달 실지급액 기준으로 160만여원을 받는다고 한다. 청소노동자 조아무개(55)씨는 “ㅌ업체가 청소용역을 하고 있는 고려대 안암병원은 시급이 6950원인데 세브란스병원은 6030원이라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 노조가 있었지만 현실이 바뀌지 않자, 이 회사 노동자 ㅇ씨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하기 위해 지난달 초 상담을 받고, 동료들에게 노조 가입서류를 받았다. 기업별 노조보다 교섭력이 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달도 안돼 전체 직원 230여명 가운데 130여명이 가입했다. 그러나 ㅇ씨는 ㅌ업체 관리자로부터 “민주노총 가입은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 공공운수노조가 제공한 ㅇ씨와 회사 관계자의 녹취록을 보면, 회사 관계자는 “세브란스 병원은 민주노총이 안 된다고 한다. 복수노조를 해도 좋은데 민주노총 말고 자체 노조(기업별 노조)를 하라”고 말했다. 노조 가입과 결성을 막는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던 중 지난 7일 ㅇ씨가 돌연 사직했다. 이후 민주노총에 탈퇴서를 낸 조합원이 늘어 현재 조합원은 40여명이 남은 상태지만 노조는 탈퇴서를 낸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실제론 탈퇴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조직부장은 “회사에서 ‘임금을 올려주겠다’며 민주노총에 가입하지 말라고 회유한 것으로 보인다”며 “회사의 ‘민주노총 혐오’와 부당노동행위가 도를 넘었다”고 주장했다.
원청인 신촌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ㅌ업체에서 ‘노노갈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병원쪽에 시설물과 직원 보호 요청을 했고, 상황 관찰을 할 수 있도록 보안팀을 배치했다”며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닌 직원들이 방해를 받을 수 있다는 요청에 휴게실 출입을 통제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상근자를 미행한 보안팀의 활동은 사실상 원청의 지시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이 관계자는 “병원이 민주노총 노조가 생기는 것에 대해 ㅌ업체에 입장을 전달한 바는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해명했다.
이 병원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은 13일 ‘연세세브란스지회’ 출범식을 겸해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 예정이다. 당초 병원 안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회사 쪽에 공문을 보냈으나 병원은 “의료원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장소 사용 요청을 거부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