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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쥐똥 도시락부터 희망버스까지…조선소 ‘그림자’들의 눈물

등록 2016-08-13 15:41

김정근 감독의 다큐영화 <그림자들의 섬>
한진중공업 ‘민주노조’ 투쟁 30년 다뤄
‘희망버스’ 김진숙 등 조선소 노동자들 출연
하청노동자 지키지 못한 반성도 담겨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수상… 25일 개봉
영화 <그림자들의 섬>의 한 장면
영화 <그림자들의 섬>의 한 장면

“진수식(조선소에서 완성된 배를 띄우는 행사)을 할 때면, 아저씨(동료 노동자)가 담배 한대를 불을 붙여서 배위에 얹어놓고 말했어요. ‘진숙아, ○○이 나간다…’ 배를 짓다 돌아가신 노동자들을 나름대로 기억하고 추모했던 거죠. 조선소의 노동은 돈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에요.”(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전국이 떠들썩한 지금, 조선소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다큐영화 <그림자들의 섬>(김정근 감독)이 오는 25일 개봉한다. 영화는 김진숙·박성호·윤국성·정태훈·박희찬 등 한진중공업 노동자 5명의 입을 빌어, 그들이 배를 ‘짓듯’ 지어온 30여년의 삶과 지키려고 했던 ‘민주노조’에 대한 이야기를 98분 동안 펼쳐낸다. 배급사 ‘시네마달’은 지난 12일 서울 중구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언론 시사회를 열고, 감독·출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영화는 출연자들이 처음 ‘그림자들의 섬’(한진중공업 조선소는 부산 영도에 있는데, ‘영도’는 그림자 ‘影’자에 섬 ‘島’자를 쓴다)에 발을 딛게 된 순간에 대한 인터뷰로 시작한다. 조선업 최초 여성 용접공이었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얼른 돈을 모아 대학에 가기위해” 입사했다고 했고, 학창시절 “모범생과 순둥이 그 자체”였다던 박성호 금속노조 전 한진중공업 지회장은 “조선소맨이 됐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외국에 나가서 돈을 벌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그림자들의 섬>의 한 장면
영화 <그림자들의 섬>의 한 장면
영화는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조선소안에서 배를 지으면서 ‘노동자’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그린다. 그들은 쥐똥이 섞인 도시락을 먹고 화장실이 없어 배 안에 용변을 봐야 했던 열악한 노동환경과 그 속에서 수없이 죽어나가는 동료들을 보았고, 결국 관리자들 앞에서 도시락을 집어던지며 ‘민주노조’를 만들게 된 것이다. 김 지도위원은 영화에서 “동료가 죽어갔는데도 말 한 마디 못하고, 그렇게 순한 양이 될 수가 없는 사람들. 그 아저씨들이 변하는 것을 제 눈으로 봤다”고 말했다. ‘민주노조’를 지키려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열사’들의 모습은 노동자 개인과 한진중공업 노조의 역사임에 동시에 현대사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1991년 박창수 당시 노조위원장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에 참여하려 했다는 이유로 공안당국의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의문사했다. 2003년 김주익 당시 지회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성실한 교섭을 요구하며 129일 동안 크레인 농성을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뒤이어 곽재규 조합원이 도크 위에서 몸을 던져 숨졌다. 2010년 단행된 정리해고 이후, 김 지도위원이 309일 동안 크레인 고공농성을 벌이고 많은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이를 응원하는 등 ‘사회적 연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회사가 정리해고자 복직 약속을 지키지 않자, 최강서 조합원이 2012년 대선 직후 목숨을 끊었다. 영화에서 박성호 전 지회장은 먼저 떠나보낸 이들을 떠올리며 “우리는 자신이 없어서 못죽었다”며 눈물을 쏟는 모습을 보였다.

영화는 2010년 정리해고와 파업투쟁 이후 제2노조가 들어서고, 회사가 다수노조가 된 제2노조와 금속노조를 차별했던 상황,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해서도 그린다. 그럼에도 영화의 마지막에 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어진 감독·출연자와의 대화에서 김 지도위원은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대해 “금속노조를 탈퇴해 제2노조로 간 노동자들도 박창수·김주익·곽재규가 죽었을 때 다같이 아파하고 상여를 만들고 장례를 치렀던 이들”이라며 “그들도 그것(그 때 마음)도 잊지는 말자는 마음으로 한 말”이라고 말했다.

영화 <그림자들의 섬>의 한 장면
영화 <그림자들의 섬>의 한 장면
‘민주노조’가 하청노동자들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도 나온다. 2003년 두 명이 목숨을 끊은 이후 노조의 교섭력이 매우 강해졌지만, 이어진 호황기 동안 가속화 된 비정규직화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선산업의 위기는 올해 초부터 하청노동자들의 해고로 먼저 본격화되기 시작한 상태다. 정규직의 경우 싸울 수 있는 노동조합이 있지만 하청노동자들은 노조가 없어 ‘투쟁’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김 지도위원은 영화에서 “2003년 노조가 대단한 착각을 했고 오만의 씨가 뿌려졌다. 노동조합이 강했을 때 하청문제를 풀었어야 했는데 그들을 외면하고,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고 말했다. 박 전 지회장도 출연자와의 대화에서 “구조조정 관련 대책의 모든 논의가 정규직 노동자들이 중심이 돼 있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삶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현장에서도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영화는 2014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인디다큐페스티벌·토론토 한국영화제·런던한국영화제 등에 초청받기도 했다. 2011년 ‘희망버스’를 다룬 영화 <버스를 타자>(2012)를 연출하기도 했던 김정근 감독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가 시작된 2010년부터 카메라를 들고 노동자들과 인연을 맺었고, 5년 동안의 촬영 끝에 이번에 영화를 완성했다. 김 감독은 “이들이 한진중공업에 입사하던 순간부터 맨손으로 배를 만들었을 때의 기쁨,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울분까지 꼼꼼하고 세심하게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다”며 “구의역에서 목숨을 잃은 하청노동자 김군부터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죽음 등 노동현실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가운데,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일궈갈 실마리를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사진 시네마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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