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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희망퇴직 거부자 저성과자 만들어 ‘방문판매’시킨 SKT

등록 2017-01-04 20:58수정 2017-01-04 22:11

2013년 다이렉트세일즈팀 만들어
할당량 못미치면 사유서·경고장
팀원들 “희망퇴직 거부해 발령…
자존심 건드려 퇴직시키려는 것”

중노위 “부당전직” 판정에도
회사, 원직복직 않고 행정소송 내
“디에스팀은 회사에 꼭 필요한 조직”
1994년 기술직으로 에스케이텔레콤에 입사한 ㄱ(55)씨에게 지난해는 악몽과도 같은 한해였다. 입사 이후 20여년 넘는 동안 한번도 판매업무를 해본 적 없던 ㄱ씨는 2015년 12월말 다이렉트세일즈(DS·디에스)팀에 발령돼 스마트워치, 키즈폰 등을 방문판매하는 일을 해야 했다. 할당량은 월 30개였다. 회사는 판매가 7개에 못 미치면 사유서를 쓰게 하고, 못파는 달이 누적되면 경고장을 부과했다. 최근 <한겨레>와 만난 ㄱ씨는 “상가나 사무실 등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가입에 신분증까지 필요한 스마트워치를 사달라고 하면 다들 이상한 사람으로 봤다”며 “친구들에 부탁하면 ‘차라리 돈을 줄 테니 이런 거 팔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사유서와 경고장은 차곡차곡 쌓여 갔다.

평생 기술업무만 해 온 ㄱ씨가 방문판매를 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ㄱ씨는 2015년 3월 ‘45살 이상, 근속 15년 이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특별퇴직(희망퇴직) 신청을 하지 않았다. 다음달 ㄱ씨는 연고가 전혀 없던 대구로 발령이 났고 연말 인사평가에서 전체 직원 가운데 2~3%에게만 부여되는 ‘시(C)’를 받아 디에스팀으로 발령났다. 입사 27년차 50대 기술직 노동자 ㄴ씨도 희망퇴직을 거부한 뒤 지방근무를 거쳐 ㄱ씨와 함께 디에스팀으로 발령났다. ㄴ씨는 “광주에서 맡은 업무가 성과를 낼 수 있는 업무가 아니었는데도 고과를 낮게 줘서 디에스팀에 왔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데 따른 수순”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근무하는 디에스팀은 직원들 사이에서 ‘사직의 관문’으로 불린다. 2013년 12월 설립 당시 28명으로 출발한 디에스팀은 1년여 만에 19명이 자진퇴직하고 1명이 징계해고됐다. ㄱ씨는 “희망퇴직을 거부한 이들에게 절대로 달성할 수 없는 목표치를 부여해 고과를 낮게 준 다음 저성과자로 만들어 해고하거나, 자존심을 건드려 스스로 나가게 하는 것이 회사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동통신 3사 중에 정규직 노동자가 방문판매를 하는 회사는 에스케이텔레콤이 유일하고, 에스케이텔레콤에서도 방문판매 조직은 디에스팀이 유일하다.

ㄱ씨, ㄴ씨를 비롯한 디에스팀 노동자 7명은 지난해 3월 노동위원회에 “디에스팀 발령이 부당하다”며 부당전직 구제신청을 냈고, 지난해 10월 중앙노동위원회는 “전직명령이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고 생활상의 불이익이 존재하며, 최소한의 협의 절차 없이 이뤄진 인사권 남용으로 부당하다”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판정문은 “객관적 인사기준이 없이 진행된 전직 과정을 보면 희망퇴직에 불응해 이뤄진 것으로 볼 개연성이 높다”며 “디에스팀의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직원들의 저조한 영업실적과 소요되는 인건비를 비교해 볼 때, 회사가 디에스팀으로 발령해 방문판매 업무를 직접 수행하게 할 정도의 업무상 필요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실적 부진을 이유로 사유서를 징구하고 3개월 만에 경고장을 내리는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면서 노동자들의 업무 적응을 위한 업무상의 배려가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회사는 이들을 원직 복귀시키지 않은 채, 지난해 11월28일 중노위 판정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회사는 현재 디에스팀 직원들에게 방문판매 업무 대신 다른 일을 맡기고 있다. 서울 시내의 대리점을 돌면서 대리점에 광고용 모니터들이 잘 켜져 있는지, 대리점 직원들의 근무상태가 어떤지 등을 매일 지역별로 대리점 7곳을 체크한 뒤 보고하고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사유서를 낸다. ㄴ씨는 “월급이 줄더라도 회사에 필요하고 내 능력과 적성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지만, 회사는 이런 의사를 표현할 기회마저 박탈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우리의 원직 복직을 넘어, 열심히 일하고 있는 후배들이 디에스팀과 같은 곳에 발령 나서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에스케이텔레콤 관계자는 “디에스팀은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조직으로 회사의 필요에 따른 미션을 수행해왔고, 지난달부터는 수도권지역 상권경쟁력 제고업무를 추가했다”며 “디에스팀 발령은 희망퇴직 거부와는 무관하고 기존 직무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직원들에게 최적의 업무를 맡기기 위한 조처”라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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