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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단독] 법원 “조선소 재하청 계약직 물량팀장도 노동자”

등록 2017-03-15 15:28수정 2017-03-15 16:19

삼성중 재하청업체서 일감받는 물량팀장
회식중 숨지자 ‘산재 인정해달라’ 소송
서울고법, 1심처럼 노동자 인정 판결
정부는 사용자로 규정 ‘고용보호’ 미흡
지난해 6월 국회 정문 앞에서 `13만 조선소 하청 노동자 고용보장 촉구, 노조가입운동 선포' 조선소 하청노동자 공동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해 6월 국회 정문 앞에서 `13만 조선소 하청 노동자 고용보장 촉구, 노조가입운동 선포' 조선소 하청노동자 공동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법원이 조선소 내 업무 일부를 재하도급받아 부정기적으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이른바 ‘물량팀’의 팀장도 노동자로 인정해 회식 중 사망을 산업재해로 봐야 한다고 판결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조선소 물량팀장을 개인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인정한 판결은 처음이다.

서울고법 행정8부(재판장 김필곤)는 회식 중 숨진 삼성중공업 사외하청업체의 물량팀장 이아무개씨의 부인이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난해 8월 1심과 같이 원고 승소판결했다. 이 판결은 근로복지공단이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당시 판결문을 보면, 용접공인 이씨는 2012년 11월부터 삼성중공업 드릴쉽건조 때 사용되는 배관파이프를 납품하는 하청업체인 가나중공업의 밀양공장에서 일했지만, 가나중공업의 노동자가 아니었다. 이씨는 가나중공업의 소사장업체인 ㅎ회사와 작업량에 따라 기성금(도급대금)을 받기로 계약하고 기성금을 받아 같은 팀 팀원 8명에게 이를 분배했다. 삼성중공업-가나중공업-ㅎ업체-물량팀으로 내려오는 복잡한 고용·도급관계에 있었던 셈이다.

근무 1년 남짓 만인 2013년 11월 이씨는 퇴근 뒤 물량팀원들과 함께 한 회식에서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는 바람에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숨졌다. 이씨의 부인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라고 산재신청을 했지만, 공단은 “이씨는 노동자가 아닌 도급사업자고, 회식은 ‘사용자’ 입장에서 연 것이지 ㅎ업체의 사업주를 대신해 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거부 처분했다. 이씨의 부인은 2015년 3월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쟁점은 ㅎ회사로부터 취부·용접작업 인치당 2500원에 해당하는 도급대금을 받아 팀원들에게 나눠줬던 이씨를 ㅎ회사의 노동자로 볼 수 있냐는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물량팀장’은 팀원들과 함께 일을 하더라도 팀원들을 고용하는 개인사업자로 인식해 산재보험 혜택이나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빠진다.

그러나 법원은 이씨가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ㅎ업체의 물량팀 4개는 ㅎ업체의 지시에 따라 근무했고 물량팀의 근태 체크와 채용에도 관여했고 작업에 필요한 소모품·공구·작업복은 ㅎ업체에서 지급했고 이씨가 이를 분담한 적이 없다”고 봤다. 이어 “물량팀장에게 기성금을 지급한 뒤 팀원들에게 나눠주도록 한 것은 물량팀 노동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사용하기 위해 해당 업무를 맡긴 것이라 볼 수 있다”며 “이씨가 기본급·고정급이 아니라 작업물량에 따라 정산된 돈을 받긴 했지만, 성과급 형태의 돈 역시 노동의 양과 질을 평가해 지급되는 것이라 할 수 있어 노동의 대가인 임금의 성격이 부정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같은 팀원들과 열었던 회식 과정에 숨진 것 역시 ‘업무상 사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근로복지공단은 회식비를 이씨가 낸 점을 들어 “회식의 주최자가 ㅎ회사가 아니라 이씨”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씨가 회식비를 포함한 기성금을 받은 중간관리자로서 좋은 실적을 낸 팀원들을 치하하고 격려하기 위해 (ㅎ회사) 사업주를 대리해 회식을 열고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회식시간이 근무시간으로 인정되거나 ㅎ회사 대표자가 직접 회식에 참여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ㅎ회사의 노무관리·사업상 운영에 필요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김태욱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지난해 조선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물량팀장을 사용자로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물량팀장·팀원에 대한 적극적인 고용보호 조처를 하지 않았다”며 “이미 지난해 8월에 물량팀장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결이 나온 만큼, 조선업 고용구조에 대한 적극적인 실태조사를 벌여 물량팀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조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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