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에 맞춘 라이딩으로 건강도 튼튼, 주머니 사정도 든든. 시간당 1만5000원까지 벌 수 있습니다.”
한 대형 배달대행업체가 배달원을 모집하면서 내건 광고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플랫폼 노동’으로 분류되는 배달대행업체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업체는 자신들과 계약을 맺은 배달원 상당수가 20~30대라는 점을 들어 “청년 일자리”를 늘렸다고 홍보한다.
다른 배달대행업체는 ‘고객사’인 음식점을 유치하기 위해 “기존 배달원 인건비 230만원, 식대 20만원, 보험료 15만원 등 월 300만원 비용을 월 150만원으로 줄여 연간 1800만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음식점들에 ‘비용 절감’을 약속했던 배달대행업체들은 배달원들을 상대로 ‘비용 절감’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업체들은 배달원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위탁계약’을 맺으면 배달원이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가 되기 때문에 4대 보험 가입이나 퇴직금 부담 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배민라이더스·부릉 등 일부 대형업체들은 배달원들을 직접고용하기도 하지만 전체 배달원 가운데 비율이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정보통신(IT)기술 발전을 기반으로 생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노동력이 거래되는 ‘플랫폼 노동’은 한국에선 태동 단계지만 외국에선 확산 단계에 있다. 자가용을 이용한 택시영업인 ‘우버택시’나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특정한 업무를 맡기면, 불특정 다수의 노무제공자들이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크라우드 워크’ 플랫폼인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가 대표적이다.
이런 노동의 특징은, 사용자가 ‘플랫폼’인지, 아니면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인지 모호한 탓에 노동자들을 ‘독립계약자’, 즉 자영업자로 전락시킨다는 점이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가는 생각보다 크다. 기존 고용관계에서 지불되던 고용보험·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보장도 받지 못할뿐더러, 노동자들이 누리던 노동시간 규제, 휴게·휴직의 권리, 해고로부터의 보호, 최저임금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할 상태에 놓인다.
2015년 독일에서 발표된 ‘크라우드 워크: 새로운 노동형태-사용자는 사라지는가?’라는 논문을 보면,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를 통해 일하는 ‘크라우드 워커’의 평균소득은 비숙련업무의 경우 시간당 2달러 선에 그쳤고, 업무효율이 높은 숙련된 이들도 8달러에 그쳤다. 디지털 기술 발전이 ‘질 낮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이미 플랫폼 노동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우버택시 기사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았다. 프랑스는 지난해 8월 ‘노동과 사회적 대화의 현대화, 그리고 직업적 경로의 보장에 관한 법’이라는 노동법 개정안을 통해 디지털 플랫폼의 의무와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규정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이 법은 노동자의 산재보험료·직업훈련비용 등을 플랫폼 제공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노동자들에게 사실상 파업권과 단결권·단체교섭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난달 31일 고용노동부가 배달대행업체 배달원들의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하도록 기준을 정비한 것이 고작이다. 이마저 본인이 보험료의 절반을 내야 하고, 스스로 제외 신청을 할 수도 있다.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플랫폼 노동은 노동력 중개의 형태가 디지털의 외피를 쓴 것이 새로울 뿐, 고용관계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며 “디지털 플랫폼이 사용자의 노동자 보호 책임 회피의 핑계가 되지 않도록 자영업자-노동자 구분이 애매한 직종의 사용자에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사회보험료를 부과하는 등 의지를 갖고 노동자 보호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박태우 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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