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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난장이 아버지의 굴뚝이 대를 이어 울창하다

등록 2017-04-29 09:04수정 2017-04-29 10:48

땅에서 보이지 않던 노동자들이
보이는 존재 되려 광고탑에 올라
“우리 여기 있다”며 목숨 걸고 광고

난장이가 난장이인 까닭은
난장이여서가 아니라
난장이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유성기업 노동자 이정훈·홍종인이 ‘노조파괴 경영진 처벌’ 등을 요구하며 259일(홍종인은 151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던 광고탑(충북 옥천)이 농성 해제 이튿날(2014년 6월29일) 곧바로 철거되고 있다. 노조파괴를 지시한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이 지난 2월 구속됐지만 공장의 현실(노조 파업 계속)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정훈 제공
유성기업 노동자 이정훈·홍종인이 ‘노조파괴 경영진 처벌’ 등을 요구하며 259일(홍종인은 151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던 광고탑(충북 옥천)이 농성 해제 이튿날(2014년 6월29일) 곧바로 철거되고 있다. 노조파괴를 지시한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이 지난 2월 구속됐지만 공장의 현실(노조 파업 계속)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정훈 제공
[토요판] 뉴스분석 왜?

난장이 아버지 사후 40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의 300쇄가 4월10일 출간·배포됐다. 이튿날 울산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노동자 2명이 고가도로 교각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사흘 뒤 해고·비정규직 노동자 6명이 서울 광화문 광고탑에 올랐다. 난장이 아버지가 굴뚝에서 떨어져 달로 떠난 뒤 40년(1976년 표제작 발표·1978년 같은 제목의 소설집 출간)이 됐다. 그동안 그가 매달렸던 벼랑에 그의 아들딸이 다시 매달렸고 거듭 매달리고 있다. ‘고공이 있던’ 아버지의 자리는 남루하고, ‘고공에 있는’ 아들딸의 자리는 가파르다. 소설과 현실이 40년을 사이에 두고 포개진다.

아버지 김불이가 벽돌공장 굴뚝 꼭대기에 섰다. 한 걸음 앞에 달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피뢰침을 붙잡고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단편 ‘난쏘공’)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철거를 앞둔 앙상한 집을 내려다봤다. 1929년에 태어난 아버지는 47살이었다. 눈동자 안에서 달이 지붕 위로 떨어졌을 때 난장이 아버지의 발이 허공을 밟았다.

고공이 있는(던) 자리

아버지가 죽은 “197×년”, 영희는 17살이었다. 영희가 팬지꽃 앞에 앉아 줄 끊어진 기타를 치면 큰오빠 영수는 굴뚝 밑에서 아버지를 잡아당긴 달을 올려다봤다. 영수는 키 작은 아버지가 키 큰 굴뚝에 오른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영수는 근로기준법 위반에 항의하고 해고 직전 회사를 나왔다.(‘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영희는 학교를 그만두고 은강방직에 입사했다.(같은 단편)

난장이 아버지 사후 26년, 영희는 43살이 됐다. 그해(2003년)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이 해고자 복직과 손배가압류 철회를 요구하며 85호 크레인(90m)에 올랐다. 고공농성 사상 첫 100일을 넘긴 그는 129일째 목숨을 끊었다. 김주익이 죽고 20여일 뒤 기아특수강(현 세아베스틸) 해고노동자 조성옥·이재현이 복직을 요구하며 50m 굴뚝(132일)에 올랐다. 은강방직에서 잿빛 청춘을 보낸 영희는 청력이 느슨해져 소리를 잘 건지지 못했다. 죽은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고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잃었다.(‘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자기 시대에 앙심을 품은 뒤부터 아버지는 손을 뻗어 달을 만지려 했다.

난장이 아버지 사후 34년, 영희는 51살이 됐다. 그해(2011년) 김주익의 동료 김진숙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8년 전 김주익이 죽은 크레인(309일)에 올랐다. 아버지의 앙심을 딸이 품었을 때 노동은 썰리고 쪼개져(派) 보내지고(遣) 있었다. 영희도 ‘파견’됐다.

난장이 아버지 사후 35년, 영희는 52살이 됐다. 그해(2012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한상균·문기주·복기성이 정리해고 철회와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며 40m 송전탑에 올랐다. 감전의 공포와 171일을 싸우는 동안 ‘객공’(봉제업 1인 하청) 영희는 미싱을 돌려 ‘브랜드’ 옷을 박았다. 십대의 영희가 직영에서 하청으로, 지상에서 지하로, 퇴직금과 보너스도 없는 곳으로, 그렇게 흘러 의류·봉제 하도급의 끝자락을 깁는 오십대 객공이 됐다.

난장이 아버지 사후 36년, 영희는 53살이 됐다. 그해(2013년) 2월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오수영·여민희가 복직을 요구하며 30m 성당 종탑(202일)에 올랐다. 10월 유성기업 노동자 이정훈·홍종인이 ‘노조파괴 경영진 처벌’을 요구하며 22m 광고탑(259일)에 올랐다. 난장이 아버지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키 117㎝에 무게 32㎏의 몸(‘난쏘공’)에 깃들어 살았다. 난장이의 딸 영희도 아버지처럼 점점 안 보이는 사람이 돼갔다.

난장이 아버지 사후 37년, 영희는 54살이 됐다. 그해(2014년) 5월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가 복직을 요구하며 45m 굴뚝(408일)에 올랐다. 11월 씨앤앰 비정규직 임정균·강성덕이 해고자 복직과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30m 광고탑(50일)에 올랐다. 한 달 뒤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정욱·이창근이 복직을 요구하며 70m 공장 굴뚝(101일)에 올랐다. “(우리를 가둔) 구역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난쏘공’)고 아버지가 죽은 뒤 큰오빠는 말했었다.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하늘 구역’에 갇혔다.

난장이 아버지 사후 38년, 영희는 55살이 됐다. 그해(2015년) 2월 엘지유플러스·에스케이브로드밴드 비정규직 강세웅·장연의가 해고자 복직과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15m 광고탑(80일)에 올랐다. 4월 대우조선해양 비정규직 강병재가 복직 약속(2011년 3월 88일간의 송전탑 농성 때) 이행을 요구하며 50m 크레인(165일)에 올랐다. 일주일 뒤 부산 생탁·택시 노동자 송복남·심정보가 복직과 노조활동 인정을 요구하며 10m 광고탑(253일)에 올랐다. 6월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최정명·한규협이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50m 광고탑(364일)에 올랐다.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영희의 아들은 이 사회에서 정규직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기대를 접었다. 아들은 “생활비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생존비”(‘은강 노동 가족의 생존비’)를 걱정했다. 난장이 아버지의 몸이 작다고 생명의 양까지 적었을 리는 없었다.(‘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정규직이 아니라고 살아내야 할 삶의 양까지 적을 리는 없다. 난장이 아버지가 올랐던 굴뚝에 영희의 비정규직 아들딸들이 섰다.

난장이 아버지 사후 39년, 영희는 56살이 됐다. 그해(2016년) 6월 기아차 최정명·한규협이 하늘에서 한 해를 가득 채우고 내려왔다. 2013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하늘이 비었다. 사람 없는 하늘이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땅’을 뜻하진 않았다. 200일 이상 초장기 농성 7건은 100% ‘이명박 정부 이후의 현상’이다. 그중 6건이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했거나 계속됐다. 내려올 길을 찾지 못한 노동자들이 땅과 구별되지 않는 ‘일상’을 하늘에서 살았다. 사람 사는 땅에서 구할 희망이 없는 노동자들이 사람이 살 수 없는 하늘에 올라 희망을 구할 때, 그 희망과 그 절망의 경계가 어디인지 영희의 아들은 구분할 수 없었다.

난장이 아버지 사후 40년, 영희는 57살이 됐다. 이해(2017년) 4월11일 울산 현대미포조선 비정규직 전영수·이성호가 ‘조선소 블랙리스트 폐지’ 등을 요구하며 20m 고가도로 교각에 올랐다. 사내하청업체 폐업 뒤 노조 활동을 한 사람들만 고용승계에서 배제됐다고 두 사람은 호소했다. 사흘 뒤 6개 사업장의 노동자들(하이텍알씨디코리아 김혜진, 세종호텔 고진수, 동양시멘트 김경래, 아사히글라스 오수일, 콜텍 이인근, 현대차울산 사내하청 장재영)이 ‘정리해고·비정규직 노동악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사거리 40m 광고탑에 올랐다. 그들은 처음부터 음식을 끊고 물과 소금만으로 버티고 있다. 노동을 눌러 난장이를 만든 권력이 감옥에 갇히고 새 권력을 뽑기 직전 다시 고공이 솟았다. 생전 아버지가 허리 굽힌 인사를 받을 땐 선거 시기뿐이었다. 부드러운 손들과 악수하면서 아버지는 발뒤꿈치를 들어야 했다. “그들은 엉뚱하게도 계획을 내세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었다. 설혹 무엇을 이룬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고통을 알아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줄 사람이었다.”(‘난쏘공’)

첨단에 찔린 난장이의 아들딸

난장이 아버지 사후 40년, 영희는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의 시대에 맹렬했던 블랙리스트가 아들의 시대까지 뻗어내려 새까맣게 칠했다. 블랙리스트는 존재하는 누군가의 존재를 지웠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지워지지 않기 위해 고가도로에 올랐다. “유령 같은 존재로 살아야 하는 현실을 견딜 수 없었다”고 광고탑의 김혜진도 말했다. “촛불정국에서조차 발언권을 얻지 못하고 방송 뉴스의 배경으로만 처리된” 그들은 보이는 사람이 되려고 하늘에 올랐다. 땅에서 보이지 않던 그들이 광고탑 꼭대기에 서서 “우리를 봐 달라”며 스스로를 광고했다. 난장이가 난장이인 까닭은 난장이여서가 아니라 난장이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늘 벼랑의 목숨 건 광고는 여전히 이야기되지 않고 있다.

난장이 아버지 사후 40년간, 난장이들의 굴뚝은 제거돼왔다. “난장이와 난장이의 부인, 난장이의 두 아들, 그리고 난장이의 딸이 살아간 흔적은 거기에 없었다.”(‘난쏘공’) 한진중공업 김주익과 김진숙이 올랐던 85호 크레인은 김진숙의 착륙 직후 해체돼 고철로 팔렸다. 기아특수강 조성옥·이재현이 내려온 굴뚝은 철강 주조 방식이 바뀌면서 철거됐다. 쌍용차 한상균·문기주·복기성이 농성했던 송전탑은 착륙 직후 뾰족한 원형 창살이 설치된 뒤 2016년 지중화로 사라졌다. 유성기업 이정훈·홍종인의 광고탑은 농성 해제 이튿날 바로 뽑혔다. 스타케미칼 차광호가 국내 최장기 고공농성을 한 굴뚝은 중간 난간과 사다리가 잘려나갔다. 씨앤앰 비정규직 임정균·강성덕의 광고탑 꼭대기엔 태양열 집광판을 설치해 농성을 막았고, 엘지유플러스·에스케이브로드밴드 강세웅·장연의의 광고탑 위엔 세모난 지붕을 씌워 직립이 불가능해졌다. 쌍용차 김정욱·이창근이 머물렀던 굴뚝도 하단 사다리를 절단해 날개 없인 올라갈 수 없게 했다. 생탁 송복남, 택시 심정보가 견딘 광고탑 기둥엔 철제 구조물을 덮어 출입을 제한했다. 난장이 아버지가 굴뚝에서 소멸한 뒤 수많은 굴뚝이 태어났다. 고공이 번식하는 동안 이 세계는 난장이의 후손이 더는 하늘에 오르지 않아도 되는 땅을 만들기보다 다신 하늘에 매달리지 못하도록 하는 데 진력했다.

난장이 아버지 사후 40년, 영희는 안 보인다. 장례를 치른 어머니는 반 줌 재를 쌌던 종이를 물 위에 띄웠다.(‘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바람이 불었고 아버지는 날아갔다. 아버지는 없어졌는데 아버지의 굴뚝은 대를 바꿔 울창해졌다. 아무도 보지 않는 하늘에서 영희의 아들딸이 첨단에 찔려 먼지로 풍화되고 있다. 첨단은 뾰족하고 날카로운(尖) 끝(端)에 있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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