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1심 깨고 원고승소 판결
“발병원인 규명 안된 희귀질환도
발병·악화 요소 존재하면 산재”
“발병원인 규명 안된 희귀질환도
발병·악화 요소 존재하면 산재”
법원이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가 앓는 희귀질환 ‘다발성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에서 ‘다발성경화증’이 산재로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법원은 “발병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희귀질환이더라도 현재의 의학적 연구성과를 통해 질병의 발병·악화 원인으로 거론되는 요소들이 업무환경이나 업무수행과정에 존재한다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행정2부(재판장 김용석)는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2년동안 일하다 다발성경화증을 앓게된 김소정(33·가명)씨가 근로복지공단의 요양 불승인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1심을 깨고 원고 승소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김씨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2003년 입사해 2년만에 퇴사한 뒤 체중감소·소변이상·시력저하·안면마비·감각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났고 퇴사 3년만에 다발성경화증 판정을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지급해달라고 신청했으나 공단이 거부하자 2013년 소송을 냈다.
다발성경화증은 한국에서의 유병률이 10만명당 3.5명, 20대의 경우 10만명당 1.4명으로 매우 낮은 희귀질환으로, 정확한 발병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이유로 업무상질병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병의 발병원인으로 꼽히는 6가지 가운데 △햇빛노출 부족 △유기용제·중금속 노출 △교대근무 등 3가지가 김씨에게 해당된다고 봐 업무상 질병으로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김씨의 발병시기가 한국인 평균 발병 연령(38.3살)에 비해 이르고,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이 병이 발생한 사람이 4명인 점까지 고려하면, 업무환경이 이 병을 유발했거나 적어도 정상적인 속도 이상으로 빨리 진행시켰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유기용제 노출과 관련해 ‘유해가스를 실외로 배출시키는 설비가 없었으며, 유해물질에 단기간 고농도로 노출될 수 있는 작업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돼있지 않다’는 2013년 산업안전보건공단의 기흥공장에 대한 안전보건진단 결과를 인용하면서 “당시 삼성전자가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유해물질 누출 관리시스템 평가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던 것을 고려하면, 진단된 것 이상의 문제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혀, 해당 문서 제출에 소극적이었던 삼성전자의 태도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김씨의 소송을 대리한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이날 성명을 내어 “근로복지공단은 부당한 상고로 피해자의 고통을 연장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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