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에 있는 자동차부품회사인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만도헬라) 공장 정문에 지난 10일 ‘종이 한장’이 붙었다. ‘무단침입 금지 공고문’이라는 제목의 종이에는 “당사(만도헬라)와 사내하청업체 두곳의 도급계약이 해지됐으니, 사내하청 노동자의 출입을 금지하고 위반할 경우 법적 조처를 취하겠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이 회사의 생산직 노동자 350여명은 만도헬라 소속이 아닌 사내하청업체 소속이다. 이들은 지난 2월 노동조합(금속노조 만도헬라지회)을 만들었다. 최장 주 84시간 일하며 최저임금에 가까운 시급을 받는 현실을 바꾸고자 13일 현재 43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노조가 파업을 지속하자 만도헬라는 지난 9일 하청업체들과의 도급계약을 해지해버렸다. 대신 아르바이트 노동자 등을 투입해 공장을 돌렸다. 노조 관계자는 “원청이 도급계약을 해지해 노조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며 “차량 안전과 직결되는 부품인데도, 원청이 아르바이트를 채용해 대체 생산하면서 불량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만도헬라 관계자는 “언론에 따로 드릴 말은 없다”며 해명을 피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쟁의행위에 따른 대체생산·신규채용·대체도급을 법으로 금지한다. 대체생산이 허용되면 파업의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원청 사용자와 하청 노조 사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하청 노동자와 근로계약 관계가 아닌 원청은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다른 업체에 도급을 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엘지(LG)유플러스도 인터넷 설치·수리 노동자 노조(희망연대노조 엘지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가 7일 하루 동안 파업을 예고하자, 조합원들이 소속된 대리점(협력업체) 30여곳 대표에게 만도헬라처럼 종이 한 장을 들이밀었다. 노조가 13일 공개한 ‘타스크(업무) 이관 동의서’를 보면, 엘지유플러스는 파업 하루 전 노조 조합원이 있는 대리점 대표에게서 “당사 내부적인 사유로 엘지유플러스에서 부여받은 개통·애프터서비스 업무를 타 대리점으로 이관해 처리하는 데 동의한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받았다. 실제로 파업 참가자가 있었던 대리점의 일부 업무가 노조 조합원이 없는 다른 대리점에서 수행됐다.
엘지유플러스 관계자는 “파업 등 대리점 자체의 문제로 위탁 업무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정상적인 고객서비스 유지를 위해 해당 업무 일부 또는 전부를 회수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장준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은 “본사-대리점 계약에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업무를 회수한다는 규정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원청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본사 주도하에 노조의 파업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글로비스의 협력업체인 동진오토텍 노동자들이 지난달 15일 불 꺼진 울산 공장에서 공장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도 노동조합을 세운 뒤 회사가 문을 닫아 실직 위기에 처해 있다. 울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노동계에선 하청노조에 대한 원청업체의 개입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이들 업체뿐만 아니라 현대글로비스의 하청업체인 동진오토텍의 경우 지난해 10월 노조를 만들었다가 지난 4월 글로비스와의 도급계약이 해지돼 노동자 100여명이 해고됐다. 노조는 이 배후에 원청인 현대글로비스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노조법의 ‘사용자’에 원청 사용자도 포함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용우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문재인 정부가 원청 사용자를 하청 노동자의 공동사용자로 보고 근로조건과 산업안전 책임을 부여하겠다고 공약했다”며 “노조법의 사용자 개념을 확대해 하청 노조가 원청과 직접 교섭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 방법”이라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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