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노동

‘갑질 냉가슴’ 택배기사…노조필증 이번엔 받을까

등록 2017-09-11 23:01수정 2017-09-12 00:36

‘ILO 협약 비준’ 추진 문재인 정부에
“설립필증 발급해달라” 요구 농성
고용부서 2차례 보완 요청 공문

특수고용노동자 노조 설립 여부에
법원 “가능”판결…정부 대부분 반려
고용부 “종속관계 등 종합 검토중”
2002년 대한통운(현 씨제이대한통운) 정규직 택배기사였던 이상용(45)씨는 입사 3년 만에 회사와 배송계약을 맺는 ‘무늬만 사장님’으로 바뀌었다. 정규직 택배기사를 줄인다는 회사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택배기사 경력이 쌓일수록 택배시장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월급에 해당하는 수수료는 줄고 기사에게 전가하는 비용부담은 늘어갔다. 이를 택배회사의 ‘갑질’이라 생각한 이씨는 ‘법외노조’인 화물연대 택배분회에 가입해 2013년 5월, 2015년 9월 두 차례 파업에 동참했다.

그런데 이씨는 2015년 파업 이후 여러 택배회사를 찾았으나 파업 참가 전력 때문에 일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씨는 지난달 16일 울산지역 씨제이대한통운에서 다시 일하려 했지만, 본사 직원인 지점장은 이씨가 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씨가 제공한 그와 씨제이대한통운 울산지점장 사이의 대화 녹음을 들어보면 지점장은 2년 전 파업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이상용씨는 누가 얘기해도 우리 회사에서 일할 수 없어요”라고 했다. 이씨는 11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본사는 대리점-택배기사 계약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노조활동을 하고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취업을 못 하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지난달 28일부터 서울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지난 1월 설립총회 때부터 참여한 민주노총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의 설립필증을 발급하라는 농성을 하고 있다. 이씨는 “특수고용노동자는 갑질을 당하고 부당한 처우를 당해도 아무 곳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고, 노조 설립필증을 내달라고 농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택배노조 설립신고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첫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 설립 신고다. 정부가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국정과제로 삼고, 국제노동기구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에 관한 권고를 해왔던 까닭에 필증 발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택배노조는 지난달 31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설립신고서를 냈으나 2차례에 걸쳐 이를 보완하라는 요구 공문을 받았다. 지난 7일 보완 요구 공문에는 △택배회사의 업무지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 △택배회사 기사에 대한 불이익 제재 사례 등을 제출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서울청에서 검토 중이며 노동을 제공하는 형태나 사용종속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필증 발급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노동조합 설립절차 등을 규정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의 ‘노동자(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 정의가 근로기준법의 ‘노동자(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 정의와 다르다는 점을 들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노조 설립이 가능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택배기사. 한겨레 신소영 기자
택배기사. 한겨레 신소영 기자
그러나 이 판례는 현실에서 제대로 통하지 않고 있다. 설립신고 업무는 고용노동청과 지자체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어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조는 설립필증이 나오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는 등 통일된 기준이 없었다. 2005년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대구시에선 ‘대구 대리운전직노동조합’ 설립필증을 받은 뒤 활동했으나, 이후 서울·대전 등에선 반려됐다. ‘설립신고 반려’ 우려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아예 설립신고를 하지 않고 노조를 운영하거나, 산별노조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한다.

노동계에선 특수고용노동자의 제한 없는 ‘노조 할 권리’ 보장을 주장해왔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변호사)은 “노동조합을 통해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노사 자치적으로 해결할 통로를 열어줄 수 있다”며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직종만큼 다양하므로 단체협약을 통해 개선할 길을 열어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도 “사실상 ‘노조 허가제’로 운영돼온 노조법을 바꾸라는 것이 국제노동기구의 지속적인 권고 사항”이라며 “정부가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말하면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설립필증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