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시민단체들이 9월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비정규,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쉴 권리를 요구하고, 관공서가 휴무하는 날인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보장하는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제공
지난 30일부터 최장 10일의 연휴가 시작됐지만, 서울 금천구 제조업 중소기업에 다니는 ㄱ씨는 오히려 울상이다. 회사는 이번 황금연휴에 쉬기로 했지만, 연휴 10일 중에 5일은 본인의 유급연차를 쓰도록 했다. 이 회사 취업규칙이 유급휴일을 매주 일요일(주휴일), 설날·추석 당일, 근로자의 날(노동절)로만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석 당일 앞뒤로 쉬는 휴일(3·5일)은 물론,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2일, 대체휴일인 6일, 한글날인 9일은 모두 자신의 휴가를 쓰지 않으면 ‘무급휴일’이 돼 임금이 깎인다. 연차가 16일인 ㄱ씨는 5일의 휴일을 내 이번 연휴에서만 유급연차의 3분의 1 남짓을 써 버렸다. ㄱ씨는 <한겨레>와의 지난 29일 통화에서 “임시공휴일이다 대체휴일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남의 나라 얘기”라며 “연차 대체 때문에 올해 연차를 다 써 내년엔 마이너스 연차로 시작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분명 달력상 ‘빨간날’인데 왜 연차를 내야 할까?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법정 ‘유급휴일’이 근로기준법에서 일주일을 만근하는 사람에게 부여되는 주 1회 유급휴일(주휴일)과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서의 근로자의 날(노동절) 뿐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른 삼일절·광복절·개천절·한글날,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과 앞뒤 이틀, 석가탄신일·성탄절, 어린이날·현충일 등의 흔히 ‘법정공휴일’이라 부르는 15일은 노사가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을 통해 유급휴일 또는 무급휴일로 미리 정하지 않는 이상은 ‘노동의 의무가 있는 날’(소정근로일)에 포함된다. 근로기준법이 처음 제정된 1953년부터 법정공휴일은 ‘유급휴일’이라는 조항이 있었으나,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인 그해 12월 해당 조항은 법에서 사라졌다. 이 때문에 법정공휴일에 근무하지 않으면 월급이 깎이고, 근무해도 휴일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다. 1년에 80% 이상 근무한 사람에게 이듬해부터 15일의 유급연차를 주도록 한 근로기준법 조항을 감안하면, 달력에 있는 일요일이 아닌 ‘빨간날’만 모두 연차 대체해도 한해 연차가 다 사라지는 셈이다.
빨간날에 특근수당도 없이 일하라고 하거나, 쉬는데도 연차를 쓰라고 하면 노동자들로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노동상담소는 명절 전후로 전화통에 불이 난다. 김기돈 민주노총 인천본부 노동법률상담실장은 “부평·남동공단에 영세한 업체들이 몰려있기 때문에 명절 전후로 ‘연차 대체’ 문제로 상담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었는데 올해는 임시공휴일이랑 대체휴일 때문에 문의가 더 많았다. 28일에 전화상담이 10건이 들어왔는데 그중 4건이 연차 대체 관련 문의였다”며 “달력엔 분명히 ‘빨간날’인데 연차를 내라고 하니 노동자들이 당황스러워 도움 요청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같은 ‘법정공휴일 연차 대체’는 시간이 흐를수록 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라 한다. 10년 가까이 중소·영세업체가 밀집해 있는 서울 금천·구로구에서 노동상담을 해왔던 ‘서울 남부지역 노동자 권리 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 이규철 조직위원장은 “최근 노동자들이 상담을 위해 가져오는 근로계약서를 보면 유급휴일 약정이 ‘주휴일’과 ‘근로자의 날’로만 정해진 경우가 허다하다”며 “몇 년 전만 해도 ‘4대절’(삼일절·광복절·개천절·성탄절)과 설·추석 당일은 유급인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 들어 그 범위가 갈수록 축소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는 ‘휴식 차별’로 나타난다. 기업규모가 크거나 노조가 있는 회사에는 노사간 협약으로 법정공휴일을 쉬도록 정해놓은 경우가 많지만 중소·영세업체일수록 노동자들의 ‘공휴일’ 휴식권이 침해당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5인 이상 기업 408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번 추석 연휴 휴무 현황 조사를 봐도, 휴무가 유급인지 무급인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10일 이상 쉬는 기업은 300인 이상의 경우 88.6%에 달했으나, 300인 미만의 경우엔 56.2%에 그쳤고, 5일 이하로 쉬는 기업도 16.2%에 달했다. 2011년 중소기업중앙회가 1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 44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체공휴일제 도입에 대한 중소기업 의견조사’ 결과를 보면, 법정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정한 회사들도 59.2%였지만, ‘평소대로 근무한다’가 22.9%, ‘무급휴일’로 정한 곳이 11.0% ‘휴일로 부여하지 않고 연차휴가로 활용한다’는 회사가 6.9%였다. 10곳 중 4곳은 유급휴일이 아닌 셈이다.
노동계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상위권인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라도 법정공휴일 유급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법정공휴일이 유급화되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휴일근로수당에 대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평등한 휴식’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최정우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조직화사업 국장은 “중소·영세 노동자들은 명절조차 쉴 수 없고, 쉰다 하더라도 연차휴가를 당겨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사용자의 입맛에 따라 들쭉날쭉한 휴식권의 현실에서 임시공휴일·대체공휴일은 먼 나라의 얘기로, 휴식 양극화 해소를 더 이상을 미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국회에도 관련 법안들이 제출된 상태다. 주로 현재 법정공휴일 규정이 관공서에 휴일을 정하기 위한 ‘대통령령’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법률을 통해 모든 공공·민간 부문에서 모두 휴일로 보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 26일 대표 발의한 ‘국민의 휴일에 관한 법률안’이 대표적으로, 현재의 법정공휴일과 노동절·선거일 등을 ‘국민 휴일’로 정하고 이 휴일은 근로기준법상 ‘휴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신 의원실 관계자는 “휴일이기 때문에 일단 쉬어야 하고 이를 유급으로 정할지, 무급으로 정할지는 사업장 현실에 맞춰 정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취지”라고 밝혔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같은 이름의 법안을 냈지만 근로기준법에 미치는 효력에 대해선 법률에 명시돼 있지 않다.
아예 근로기준법을 통해 법정공휴일을 ‘유급’으로 못 박자는 법안도 많이 나와 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 3월 낸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관공서의 공휴일·대체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정하도록 하자고 했다.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 1월 낸 개정안엔 기본적으로 유급으로 하되, 사업장에 따라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에 따라 무급으로도 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6월 낸 법안은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하되 주휴일에서는 제외하는 내용이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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