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서울 운현동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열린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의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실태조사’ 결과 보고대회에서 전직 스타일리스트 ㄱ(24·사진 맨 오른쪽)씨가 노동실태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
“2년 일하면 기획사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월 30만원 받으며 24시간 대기조로 버티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일을 했으면 최저임금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연예인들의 ‘스타일링’ 담당하는 전직 스타일리스트 ㄱ씨(24)의 말이다. ㄱ씨는 대학 ‘스타일리스트학과’를 나와 유명 배우 스타일리스트의 꿈을 꿨으나 업계에 만연한 ‘열정페이’로 꿈을 접어야 했다. 텔레비전·인터넷 매체·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시시각각 전하는 연예인들의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이들의 의상과 액세서리를 준비하고 옷매무새를 만지는 이들은 근로계약서도 없이 초저임금·초장시간 노동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는 지난 3월부터 8개월 동안 스타일리스트와 스타일리스트 보조(어시스턴트) 2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서울 스타일리스트 노동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온라인을 통해 진행된 이번 조사에 응답한 이들은 93.6%가 여성이었고 78.3%가 25살 미만이었다.
자료를 보면, 이들의 ‘열악한 노동실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먼저, 응답자의 92.1%가 임금을 한 달 100만원도 못 받고 있었고, 50만원 이하인 사람도 절반에 가까운 44.5%에 달했다. 이들의 업무는 의상 연구기획(코디)·제작부터 원단·협찬의상 수령, 연예인 일정 동행과 잔심부름까지 굉장히 다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임금 대부분은 ‘차비’로 소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찬 의상을 받으러 갈 때, 동대문 시장에 원단을 떼러 갈 때 사용되는 돈은 대부분 ‘자비 부담’이었고, 월 식대와 차비를 주는 사용자는 ‘조건이 좋은 사용자’에 속했다.
심각한 저임금에도 노동시간이 10시간 이상인 경우가 89.9%에 달했다. 연예인들의 스케쥴에 따라 스타일리스트도 동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며칠씩 연속으로 일하거나 24시간 대기하는 경우도 숱한 것으로 개별응답 분석결과 나타났다. 한 응답자는 “되게 스트레스받을 정도로 휴대전화 보는 걸 싫어했어요. 휴대전화 보면 연락이 올 것 같고, 그러면 일하러 가야 하니까…”라고 토로했다.
이런 ‘탈법’ 또는 ‘무법’ 노동의 배경에는 ‘업계의 관행’이 자리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94.8%가 이른바 실장·팀장이라 불리는 개인사업자에 고용돼 있었고, 회사와 계약했다고 응답한 이는 1.5%에 불과했다. 특히 근로계약서를 썼다고 응답한 사람 역시 1.5%에 그쳤다. 스타일리스트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방법은 인터넷카페(40.2%)나, 학교·학원 소개(23.6%) 지인 소개(11.3%) 등이었는데, 개별응답을 살펴보면 ‘사용자’들이 구체적인 임금·노동조건에 대한 설명 없이, “임금이 용돈 수준인데 괜찮겠나”, “이 바닥이 다 그렇다”, “임금 없이 일하겠다는 사람도 많다”는 등으로 ‘탈법 노동’을 합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참여한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업무가 보조적이라는 이유로 노동시간에 입직한지 얼마 안 되는 20대 초반 여성이라는 점을 악용해 임금을 낮은 수준으로 묶어두고 이를 유지해가는 일종의 담합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 이른바 청년들이 ‘선망’하는 직종이라는 점도 이런 ‘열정페이’를 더욱 부추긴다. 실제로 응답자들 가운데는 업무에 대해 “재미있고 얻는 게 많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 “좋아하는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꿈만 아니면 정말 최악의 직업’이라는 응답자의 말처럼, ‘꿈 산업’이 갖는 매력들이 초저임금의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며 “이른바 한류 산업의 성장사가 바로 이들 20대 여성들의 초저임금 초장시간 노동을 딛고 성장해온 만큼, ‘꿈 산업’이 노동자들에게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산업으로 만들기 위한 전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글·사진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이하는 설문에 참여한 스타일리스트 응답의 일부
“세상에 결코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하는 일과 투자되는 시간은 너무 당치도 않고, 월급 또한 너무 말도 안되는 상황입니다. 모두들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에서 이렇다 할 해결책이나 도움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너무 일이 좋아서 포기할 수 없어서 일을 하고 있지만, 부모님께 제 월급을 정확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 생각에도 너무 말이 안되기 때문이에요. 그런 적은 돈을 주면서 자기 하인 취급이나 하며 인격모독하는 사례가 반복되니 일하는 현장에서 어시스턴트들은 그저 연예인들의 하인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18일 연속 근무를 했다. 드라마 촬영과 잡지 스케줄로 인해 하루에 3시간씩 잘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사흘 정도는 사우나에서 씻고 나오기만했다. 언제부터인가 지하철만 타면 온몸이 저리고 식은땀이 쏟아지며 귀가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단 한번도 병원을 가지 못했다. 돈이 없었다. 스물여섯. 경력 3년차. 월급 50만원. 병원은 사치였다.”
“뒤에서 힘들게 일하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공정한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 좀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배우들 시중드는 일이 힘들고, 급여도 적은데 일은 늦게 끝나고, 짐 가방 다 들고 혼자 협찬 반납 돌아야 한다. 제일 큰 문제는 급여다. 월급이 100만원만 됐어도 이런 스트레스는 없을 것이다. 얼른 최저시급이라도 따졌으면 좋겠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본급조차 보장되지 않고, 직원들 사이의 예의조차 지켜지지 않아 어시스턴트들이 매일 눈물짓는 것은 유명한 얘기입니다. 경제적 뿐만 아니라, 인격적 존중도 없는 이 직업에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섬노예마냥 (밤) 12시 이전에 끝나면 정말 행복해 했던 기억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