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코리아나호텔 피트니스 센터인 ‘클럽 케이’(CLUB K)가 부당한 노동 조건에 대해 항의한다는 이유로 계약기간이 남은 트레이너를 무단으로 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트레이너 ㄱ씨는 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헬스장 쪽이) 지난달 월급을 주지 않은 채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근무조건으로 변경을 요구하며 바뀐 계약서에 서명을 하라고 강요했다. 이에 대해 항의하자 욕설과 폭언을 하며 잘랐다”고 주장했다. ㄱ씨는 아직 계약기간이 두달 가량 남아 있지만, 지난달 30일 구두로 해고통보를 받았다. ㄱ씨는 “새로 부임한 ㅇ이사에게 (새 계약서의) 부당함을 따지자 ㅇ이사가 ‘X신’, ‘XX새끼’ 등의 욕설을 퍼붓고 ‘나가’라고 했다”며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ㄱ씨의 증언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ㄱ씨를 포함해 ‘클럽 케이’에서 일한 기존 트레이너들은 2015년 5월 한 외주업체 소속으로 코리아나호텔 피트니스 센터와 계약을 맺었다. 이 외주업체는 트레이너들을 관리·공급하는 회사로 ㅇ이사는 이 업체 대표였다. 당시 트레이너들은 피트니스 센터에 일정 시간 상주하면서 ‘기본급+개인 수업 계약에 따른 수당(인센티브)’을 임금으로 받았다.
하지만 호텔 쪽은 지난해 11월 외주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올해 2월1일 소속 트레이너와 직접 ‘트레이너 업무 위탁 계약’을 맺었다. 계약서에는 “출근 및 퇴근시간은 자율적으로 하며 결근 및 지각에 대한 페널티(벌칙)를 적용받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 계약은 계약 해지 의사를 서면으로 통보하지 않을 경우 3개월 단위로 자동 연장된다.
트레이너 ㄱ씨가 피트니스 쪽과 체결한 계약서. 출퇴근이 자율적이고, 계약기간은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을 경우 3개월씩 자동 연장된다고 명시돼있다. ㄱ씨 제공
ㄱ씨는 “사실상 ‘프리랜서’로 코리아나호텔 피트니스 센터와 직접 계약을 맺은 것”이라며 “상주 시간과 기본급을 없애는 대신 수당 비율을 상대적으로 높여 임금을 받았다. 그마저도 수업 개수에 따라 수당 비율을 차등 산정하는 방식이라 수업이 많지 않은 트레이너는 수당도 적었을 것”이라고 했다.
ㄱ씨가 말하는 ‘부당 노동 조건’ 문제는 피트니스 센터가 ㅇ씨를 지난 9월 해당 센터의 이사로 다시 데려오면서 발생했다. 센터가 ㅇ이사를 통해 계약조건을 변경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ㄱ씨는 “ㅇ이사가 기존 계약과 달리(정규직처럼) 최소 8시간 이상 헬스장에 상주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기본급을 지급하지 않고 프리랜서처럼 수당으로만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밝혔다. ㄱ씨는 또 “9월부터 별다른 설명없이 월급 지급이 1주일씩 지연됐는데 이번에 새로운 노동 조건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사실상 월급을 담보로 잡고 ‘(새 계약서에 사인할 것인지) 선택을 하면 주겠다’는 식으로 압박했다”고도 주장했다.
해당 피트니스 센터의 다른 트레이너들도 “(회사 쪽이) 계약 조건을 변경해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입을 모았다. 트레이너 ㄴ씨는 “프리랜서 계약일 때는 말 그대로 수업에 따른 인센티브만 받아도 상관없지만 (정규직처럼) 상주 시간을 둘 때는 기본급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최저임금도 안되는 임금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요즘처럼 비수기일 때는 100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을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통보해 (저도) 자연스럽게 퇴직 수순을 밟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트레이너 ㄷ씨도 “다른 트레이너는 월급이 제때 지급되지 않아 카드값을 결제하지 못해 신용등급이 떨어지기도 했다”며 “계약서 작성을 할 때마다 (회사는) 계약 조건을 임의로 통보해 왔다. 이번처럼 상주를 하라고 하는 건 사실상 우리가 (회사를) 나갈 수 밖에 없도록 (강요)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ㅇ이사는 이에 대해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업장을 운영하는 입장이다 보니 회사 쪽에선 언제 출근하고 퇴근하는지 등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저는) 그 부분을 트레이너들에게 이야기한 것”이라며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었고 (노동) 조건이 바뀌는 부분에 대해선 미리 고지를 했다”고 해명했다. 또 “월급이 밀린 건 프리랜서다 보니 ‘정산이 잘 맞지 않는 상황’이라고 몇 차례 설명을 하고 그 이후에 다 지급했다”고도 덧붙였다. ㅇ이사는 “(새로운 계약조건으로) 같이 갈 수 없다고 생각되는 선생님들은 인수인계를 하는 등 (업무를) 마무리해 줬으면 한다고 말한 건데 (해당 트레이너가) 나가라는 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도 반박했다.
이번 논란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인 피트니스 센터 트레이너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ㄱ씨와 ㄴ씨는 외주업체 소속일 때도 일부 임금이 체불돼 ㅇ이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서울 서부지방법원은 지난달 15일 ㄱ씨와 ㄴ씨의 근로자성을 인정해, ㅇ이사가 밀린 임금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른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정 결정을 했다.
트레이너 ㄴ씨는 “트레이너 업계에서는 (상주 시간이 있고 정규직 형태로 계약을 해도) 퇴직금이나 4대 보험을 당연히 안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안 줘도) 할 수 있는 애들만 하고 마음에 안들면 하지 말아라’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업계가 좁다 보니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고용주에 항의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또 “동네 헬스장처럼 규모가 작은 곳은 훨씬 더 열악하다”며 “그나마 우리는 좋은 변호사를 만나서 조정을 받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김진 변호사는 “프리랜서 계약이라고 하더라도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데 해임을 할 경우 남은 기간에 해당하는 보수를 줘야 한다”며 “다만 정액 보수가 없을 때, 평균 수준으로 청구할 것이냐 최저 수준으로 청구할 것이냐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유)원의 김도형 변호사는 “기존에 같은 업장에서 상주시간을 두고 기본급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요구는 (노동조건)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 트레이너들도 (앞서) 근로자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다. 노동조건을 일방적으로 (트레이너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수 없다”라며 “새 계약조건에 대해 정당하게 항의를 했는데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일방적으로 자른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박다해 강민진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