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금속노조원들이 지난 1월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2018 금속노조 신년투쟁 선포식’을 열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을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전국금속노동조합이 현대·기아차와 한국지엠 등 완성차업체의 임금인상 요구안을 협력업체 등 소규모 사업장보다 낮게 요구했다. 금속노조는 이례적인 ‘하후상박’형 인상 요구에 대해 “산별노조다운 실험”이라고 강조했다.
금속노조는 13일 “전날 열린 45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하후상박’ 원칙하에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한국지엠은 기본급 인상률 5.3%, 그외 사업장은 7.4%로 2018년 임금인상 요구안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산별임금체계로 가기 위해선 대기업과 중소·영세 사업장 사이 극심한 임금격차 축소가 필요하다는 게 노조의 판단이다. 정일부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금속노조는 산별임금체계 도입을 장기적으로 준비해왔다. 올 상반기 안에 숙련도와 연공을 고려한 직무급 형태의 새로운 산별임금체계안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아울러 적정한 납품단가를 보전하지 못하면 하후상박 임금인상도 물거품이 된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현대·기아차와 한국지엠에 ‘사회양극화 해소 특별요구’를 제시하기로 했다. 이들에 대한 임금인상률을 2.1% 낮춘 만큼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 근절 △최초 계약 납품단가 보장 △납품계약이 보장하는 인건비 비율 적용 여부 노사 합동조사 등을 추진하자는 내용이다.
금속노조는 또 사용자 쪽에 ‘산별임금체계 마련을 위한 금속산업 노사 공동위원회’를 꾸려 관련 논의를 시작하자고 요청했다. 사용자가 산별 중앙교섭에 응하지 않아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법적 책임이 따르는 교섭 형태가 아닌 산업별 사회적 대화체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금속노조는 “산별교섭 체계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노사 공동위원회는 진입장벽을 낮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계의 오랜 숙원인 산별교섭 제도화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하지만, 실제 구현은 만만치 않다. 현행법은 기업별 교섭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단체협약 효력 범위 등 쟁점이 수두룩하다. 노동계는 ‘사용자단체 구성 의무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사용자의 ‘결사하지 않을 자유’를 해칠 수 있어 법리상 어렵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번 금속노조의 임금인상 요구안은 단순히 산업별 임금격차를 줄이는 수준이 아니라 불평등을 양산하는 원-하청 관계에 대한 구조적 접근으로, 긍정적인 시도”라며 “산별교섭에 대한 노사 간의 긍정적 경험과 상호작용이 축적돼 산별교섭 법제화로 나아가는 동력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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