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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노조결성 온몸 던진 사람들 “살맛나는 일터 우리 손으로”

등록 2018-04-30 05:01수정 2018-04-30 07:56

[노동자에게도 봄이 올까요?]
(상) ‘무노조 금기’ 깬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무노조 금기’ 깬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직고용 합의 뒤에도 노조가입 독려
무관심·망설이던 사람들도 ‘선뜻’
10여일 새 450명 늘어 1천명 넘어서
홍보물 돌려도 관리자들 제재 안해
“불합리 참지 않고 말할 용기 생겨”
2일부터 임금체계 등 실무협의 진행

지난 25일 오전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간부진이 서울의 여러 삼성전자서비스센터로 노조 홍보 활동을 떠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지난 25일 오전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간부진이 서울의 여러 삼성전자서비스센터로 노조 홍보 활동을 떠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우리 또 왔어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은 두 사람이 지난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삼성전자서비스센터를 찾았다. 그들이 가득 들고 온 노동조합 소식지와 가입신청서 묶음이 눈길을 끌었다. 벌써 일주일 사이 세번째 방문이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고객님”이라 묻는 센터 직원에게 눈인사를 건넨 윤종선 삼성전자서비스 서울지회장은 센터 손님들 틈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대기중인 수리기사가 보였다. 곧장 다가가 “노동조합에서 나왔습니다”라며 말을 걸었다. 윤 지회장은 소식지를 건네며 “(회사가) 직접고용하겠다고 합의했지만, 앞으로도 남은 일들이 많다. 함께 힘을 모아보자”고 했다. 첫 방문 때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던 직원들이 이날은 어색하게나마 눈인사를 건넸다.

노조 홍보를 마친 윤 지회장은 “이곳 사장이 노동조합을 강하게 탄압해온 터라 다들 아직 경직돼 있다. 그래도 조금씩 변화가 느껴진다”고 했다. 한 수리기사가 센터를 나서는 윤 지회장 일행을 슬그머니 따라 나왔다. “지금 제 주머니에 가입신청서가 있는데요, 혼자 가입하려니 무서워서 차마 내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동참할 수 있게 자주 찾아와주십쇼. 부탁드립니다.” 수리기사의 목소리가 간절했다.

삼성전자서비스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지난 17일 협력업체에 속한 비정규직 노동자 8천명을 직접고용하기로 합의했다. 노동조합 활동 보장에 대한 합의도 이뤄졌다. 이후 지회는 조합원을 집중적으로 모집하고 있다. 지회 간부 전원이 연차휴가를 내고 매일 ‘예비 조합원’을 만나러 전국의 서비스센터를 찾아다닌다.

“우리가 목숨 걸고 노조를 만든 이유는 탄압에 대한 분노 때문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였어요. 내 삶과 일터를 내가 직접 바꿀 수 있어야 하잖아요. 이제 그걸 더 많은 동료와 함께 하고 싶은 거죠.”

윤 지회장의 표정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에겐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들과 단체협약을 체결해 기본급제를 쟁취한 경험이 있다. 건당 수수료로 지급되는 임금체계 탓에 비수기 수입이 ‘반토막’ 나는 불안정한 생활을 하던 수리기사들은 그 이후 안정적인 급여를 받기 시작했다. 윤 지회장은 이때 “뜬구름만 같던 ‘권리’가 뭔지 확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이들에게 ‘노동조합을 하기 좋은 시기’가 찾아왔다. ‘무노조 경영’이라는 삼성의 ‘신화’를 깬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사회적 관심이 모이고 있다. 윤 지회장은 “직접고용 발표 뒤 회사 쪽의 노동조합 탄압이 그쳤다. 무장해제 수준”이라고 했다. 노동조합 조끼 차림의 노조 간부가 조회 때 모인 직원들에게 선전물을 돌려도 관리자가 이를 막지 않았다. 지회는 덕분에 ‘물 만난 고기’처럼 규모를 키우고 있다. 노사 합의 직후인 지난 18일부터 29일까지 전국에서 450명가량이 새로 조합에 가입했다. 기존 조합원 700명과 합치면 1천명을 훌쩍 넘어섰다. 얼마 전 신규 조합원이 된 한 서비스센터 수리기사 ㄱ(33)씨는 29일 <한겨레>에 “관리자와 항상 함께 근무하는 (센터) 내근직의 가입률이 저조했다. 주로 노동조합을 끌어온 외근직 동료들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했다. 이제라도 힘을 합쳐 제대로 바꿔보고 싶다”고 했다. 물론 여전히 가입을 주저하는 이들도 있다. 노동조합을 인정하겠다는 회사 쪽 약속을 여전히 믿지 못하는 것이다.

회사 쪽의 노조 탄압에 힘겹게 맞서온 조합원을 지켜본 이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당신들처럼 길거리에서 투쟁하고 농성해야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2014년 노동조합 탄압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염호석 조합원의 장례 과정에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됐던 안성철 서울 강서분회장은 “그건 삼성의 탄압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의 이야기이고, 앞으로 사쪽이 부당노동행위만 하지 않으면 그럴 일은 없다”고 대답한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노동절 다음날인 5월2일부터 일주일에 두차례 회사 쪽을 만나 직접고용 관련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직접고용에 따른 경력 인정 범위, 임금 체계, 복지 수준 등 세부 내용이 모두 이 협의에서 출발한다. 직접고용 이후의 단체교섭과 임금협상 관련해서도 지회의 구실이 클 것으로 보인다. 안형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직실장은 “더 좋은 노동조건을 쟁취하려면 노동조합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했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각종 연구로도 검증된 바 있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는 그렇지 않은 사업장에 견줘 직장탁아나 육아휴직, 출산휴가 등 가족친화적 제도가 더 잘 갖춰져 있다. 일자리 만족도를 높이고 이직률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 임금을 올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김정우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이 2012년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는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와 견줘 정규직은 7%, 비정규직은 10.7% 정도 높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조합 조직률 확대는 소득주도성장을 내건 문재인 정부의 기조와도 통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노조 조직률 제고를 위해 산별교섭 제도화와 단체협약 효력확장제 등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김정우 전문위원은 “지금 한국은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로 매우 낮다. 노동조합의 조직률을 끌어올려 임금을 올리고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여지가 그만큼 크다. 노동조합 조직률 상승이 소득주도성장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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