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과로자살’ 발생한 온라인 강의업체 에스티유니타스
직원들 우울증 진료율 1.77배 높아…정신질환 악화요인 추정
“‘그만둔다’는 선택지 못보는 학습성 무력감…조사·예방 필요”
직원들 우울증 진료율 1.77배 높아…정신질환 악화요인 추정
“‘그만둔다’는 선택지 못보는 학습성 무력감…조사·예방 필요”
“그렇게 힘들면 회사를 그만뒀어야지”, “개인적 문제인 우울증과 회사가 무슨 상관이냐”
‘공단기’(공무원단기학교), ‘자단기’(자격증단기학교) 등으로 알려진 온라인 강의업체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일했던 웹디자이너 고 장민순(36)씨가 과로에 시달리다 지난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누리꾼이 보인 반응이다. 하지만 이 회사 직원들의 우울증 진료율은 다른 직장인들에 견줘 2배 가까이 높았다. 장씨의 사망에 이 회사의 노동 조건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상조사결과 및 재발방지 마련 토론회’를 열고 “에스티유니타스 노동자의 우울증 진료율이 직장인 평균과 견줘 상당히 높았다”고 밝혔다. 장씨의 자살이 개인적 문제에 그치지 않으며,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일하는 다수 노동자가 공유하는 정신질환 악화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대책위가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건강보험 이용 내역 자료를 살펴보면, 에스티유니타스 노동자 가운데 우울증·불안장애 등으로 정신질환 진료를 받은 비율은 2014년 1명에서 2017년 18명까지 매년 급격하게 증가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 진료율만 따로 떼어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평균과 견줘 보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2016년 기준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우울증 진료율은 0.81%인 반면, 에스티유니타스는 1.43%로 1.77배 높았다.
증가폭도 위험하다. 300인 이상 사업장 전체 우울증 진료율은 2013∼2016년 동안 0.68%에서 0.81%로 완만하게 증가했지만, 에스티유니타스의 경우 2015∼2017년 2년만에 1.29%p나 올랐다. 증가폭으로 보면 2배가 넘는다.
지난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씨는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전체 근무일의 17.9%를 하루 12시간 이상 일할 만큼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았다. 과도한 업무와 야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장씨의 우울증이 악화된 것으로, 대책위는 보고 있다.
대책위는 일본의 심료내과(심신의학) 의사 유우키 유우가 한 서평에서 ‘학습성 무력감’이란 개념을 소개했다며 “장시간 노동이나 일터 괴롭힘 등 장기간 지속적으로 업무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경우 ‘도망간다’ 혹은 ‘직장을 그만 둔다’는 선택지를 보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장씨 역시 숨지기 전 메신저 대화에서 “내가 무슨 힘이 있겠어”, “나는 용감하지 못해”, “(불평 말고) 일이나 해야지” 등의 말을 하는 등 무력감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
국내외 연구 결과를 보면 장시간 노동은 정신 건강을 악화시키고 특히 우울증을 유발한다. 2013년 한국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보면, 주당 60시간 근무한 노동자는 40~48시간 근무한 노동자에 견줘 우울증상을 보일 확률이 1.62배 높았다. 지난해 ‘한국의학저널’에는 야간노동이 우울증을 43%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실리기도 했다.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정신질환을 개인적 문제나 의지의 문제로 치부하지만, 실제론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장시간 노동 환경이 정신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에스티유니타스 역시 업무 환경 내에 정신질환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존재한다 봐야한다고 대책위는 주장했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한 번의 사건이 문제가 아니다. 노동조건, 직장 문화 등 정신건강을 악화하는 근본 원인을 시급히 찾아 개선해나가야한다. 유사한 노동조건에 있는 아이티 업계 청년노동자로 관심 대상을 확대하는 한편, 일일 노동시간 제한, 하루 최소 연속휴식시간 등을 도입하고 사업주에게 노동시간 기록을 의무화하는 등 근로기준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에스티유니타스 직원들의 연도별 정신질환 유병율.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 자료
에스티유니타스 직원들의 우울증 유병율과 그외 사업장 비교.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 자료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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