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 위원들이 5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합원, 최저임금연대 회원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최저임금으로 1만원 즉시 실현을 촉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 논의’를 중단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국회는 최저임금 개악 논의 중단하라!’는 제목으로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2019년 최저임금을 논의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5월 14일 시동을 걸었지만 국회가 최저임금위원회를 무시하고 최저임금법을 건드리려고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인상률부터 제도개선 등 최저임금 전반 사안을 다루는 최저임금위원회를 두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위원회가 진행되고 있으며 “최저임금에 각종 수당, 상여금을 포함시키는 ‘임금삭감법’을 상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청원은 올라온 지 하루도 안 돼 65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국회는 최저임금 개악 논의 중단하라!’는 제목으로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
최저임금위원회는 각각 9명의 공익위원과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등 27명으로 구성된다. 임기는 3년이며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은 통상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동조합 총연합단체와 경총 등 전국적 규모 사용자단체로부터 추천받아 위촉한다. 공익위원은 노동경제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로 채워진다.
이 국민청원은 “(2018년) 최저임금 7530원은 최저임금 당사자들과 국민이 함께 싸운 결실”이라며 “국회가 마음대로 무효로 할 수 없다.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한다. 국회는 지금 당장 최저임금 개악 논의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을 논의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소위원회가 열릴 21일 오후 국회 앞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개악 저지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열어 국회로 진입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최근 논의되고 있는 최저임금 관련 쟁점은 2가지다. 첫째,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 지이고 둘째, 이 논의를 어디에서 해야 하는지다.
첫 번째 쟁점은 지난 대선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후보들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모두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는 저임금 노동자 생활 보장을 통한 불평등·양극화 해소가 시급한 과제라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임기 첫해부터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정부 주요 정책으로 삼고 추진 중이다.
지난해 7월 15일 10대 최저임금위원회 11차 전원회의에서 2018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7530원으로 결정된 뒤 한 위원회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 5개 정당이 모두 최저임금 인상을 공약한 상황에서 국민의 눈높이를 대변할 공익위원들이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8년 최저임금은 2017년 시간당 6470원보다 1060원(16.4%) 오른 셈인데 이는 최저임금이 처음 책정된 1988년 이래 가장 높은 인상액이고 인상률 16.4%는 역대 4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역대 최대 금액으로 최저임금이 오르자 재계에서는 ‘속도 조절론’을 내세우며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매달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물론 교통비·숙박비 등 복리후생비까지 최저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상여금 역시 ‘노동의 대가’로 지급하는 돈이고 “실제 지급하는 임금이 훨씬 많은데도 최저임금법 위반을 양산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26일 최저임금위원회에 속한 전문가 티에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관한 제도 개선안을 내놨다. 매달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넣자는 것이 요지였다.
노동계는 반발했다. 전문가 티에프 개선안이 나오자 민주노총은 “현행 낮은 기본급과 복잡한 수당이라는 왜곡된 임금 체계를 사후적으로 정당화시켜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을 갈망하는 430만 저임금 노동자의 희망을 짓밟는 개악 권고안”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10대 최저임금위원회는 산입범위 개편에 대한 노사 양쪽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지난 3월 7일 끝내 결렬됐다. 공이 국회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정부와 여야는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논의하기에 앞서 국회에서 산입범위 논란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태도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하는데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은 (내년도) 인상 폭과 연계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노사 당사자가 배제된 채 소수의 국회의원이 일방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해당사자의 동의 없는 무분별한 산입범위 확대는 ‘저임금 노동자 생활보장’이라는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21일 오후부터 22일 새벽까지 이어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가 결론을 내리지 못한 배경에는 이러한 현격한 입장차가 깔려있다. 정의당은 “최저임금위원회로 다시 논의를 넘기자”며 맞섰고 민주노총은 국회 논의 중단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였다.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한 가운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는 24일 다시 열릴 예정이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