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연 ‘최저임금 개악 규탄 집회’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심의해야 할 최저임금위원회가 노동자 위원의 사퇴·불참으로 파행을 빚고 있다. 국회가 노동계의 반발과 관계없이 지난달 말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게 1차적 원인이다. 최저임금 법정 심의시한인 오는 28일까지 인상 여부 등이 정해지지 않을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12일 최저임금위원회 간사 구실을 하는 김성호 상임위원(공익위원)은 “다음주 중 위원회 전원회의 일정을 다시 잡는 것을 목표로 6·13 지방선거 직후 노사 접촉을 본격적으로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류장수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27명의 위원한테 애초 14일 열릴 예정이던 전원회의 연기를 지난 11일 통보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서 추천한 노동자위원 전원(9명)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반발해 위원회 참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노동계와 사용자 단체를 함께 설득해 이르면 이번 주 후반 ‘협의 채널’을 되살린다는 게 위원회의 목표다.
최저임금위원회의 바람과 달리 노동계의 복귀 가능성은 아직 높지 않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국회와 정부의 일방적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제도가 이미 무력해졌다. 국제적으로도 인정하는 노사자치주의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겠다는 정부 약속을 국회가 먼저 깬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위원회에 속한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대한 헌법소원도 준비하고 있다. 바뀐 최저임금법이 저임금 노동자 간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반면 사용자위원들은 노동자위원 없이 위원회 회의를 열자는 태도다. 전원회의 연기 뒤 한국경영자총협회 소속 사용자위원들은 “노동계의 불참을 이유로 회의 개최조차 하지 않는 것은 최저임금 심의를 파행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 역시 성명을 내고 “사용자위원들은 노사협의로 결정된 전원회의 일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동자위원들이 최저임금위원회 참여를 전면 거부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양대노총이 국민노총 소속 노동자위원의 대표성 문제를 제기하며 끝까지 불참했지만, 처음부터 빠지지는 않았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노사단체와 협의 없이 공익위원을 위촉했고, 노동자위원도 한국노총 추천 몫에서 한 명 줄여 설립된 지 수개월 밖에 안 된 국민노총에 내줬다.
현행 최저임금법을 보면, 노동자위원들이 두번 이상 회의에 나가지 않으면 노동자위원 없이도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의결이 가능하다. 최저임금위원회 관계자는 “당연히 바로 그 조항을 적용하진 않겠지만 공익위원들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순 없다”고 말했다. 공익위원들은 그동안 노사 양쪽 위원들 없이 부산·인천 기업방문 일정 등을 진행해왔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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