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 1000일째…문송면·원진 30주기 추모위 등과 함께 기자회견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 “학생들에게 당장 노동환경교육 해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해야”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맨 앞줄 오른쪽 다섯째)씨가 2일 오전 문송면·원진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위원회, 반올림, 민중공동행동 주취로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문송면·원진 산재사망 30주기, 반올림 농성 1000일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오늘이 삼성 앞에서 농성한 지 꼭 1000일째 되는 날입니다. 지금까지 삼성의 반도체·엘시디 공장에서 일하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에 제보해 온 분만 3백몇십명이고 그중 118명이 사망했습니다. 총을 쏴서 사람을 죽인 사람은 살인죄로 처벌하는데, 화학약품으로 노동자들을 죽게 한 기업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2007년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당시 22)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2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은 서울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1988년 7월 문송면(당시 15)군이 수은중독으로 숨진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자, 반올림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1000일째 되는 날이다. 압력계기와 온도계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수은에 중독된 문군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산업재해의 문제를 알린 계기가 됐다.
황씨는 “당시 문송면은 화학약품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우리 유미도 학교에서 관련한 어떤 교육도 받지 못했다. 졸업 뒤 90% 이상이 노동자가 되는데도, 미래 노동자들에게 노동교육이나 화학약품 교육을 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당장에라도 노동환경교육을 해야 한다. 그래야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문송면·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와 민중공동행동, 반올림 등이 열었다. 30년 전 7월은 문군만이 아니라 무려 915명이 이황화탄소에 중독돼 230명이 사망한 ‘원진레이온 직업병’이 처음 알려진 때이기도 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선 본격적인 노동안전보건운동이 시작됐다.
문송면·원진 30주기 추모위 대표를 맡은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재작년 삼성과 LG의 휴대전화 부품 하청공장에서 불법파견으로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7명의 청년들이 실명했다. 19살 청년이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홀로 수리하다 사망하고, 현장 실습 중 특성화고 학생이 사망했다. 젊은 청년들의 죽음이 지금도 반복되는 처참한 현실을 더 이상 연장할 수 없다. 국회는 중대재해를 양산하고 노동자 목숨을 위협하는 기업에 대해 분명한 처벌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진레이온 피해 노동자들을 대표한 함미정 원진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사무국장은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은 여생을 이황화탄소 중독이란 절망 속에 살고 있다. 폐기돼야 할 노후한 기계, 최소한의 안전 장비와 환기시설이 없던 원진레이온의 산업재해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노동자들이 바라는 건 간단하다. 건강권이 우선되는 것이다. 노동자는 도구가 아니다. 이땅 모든 노동자들이 노동의 고귀함과 삶의 행복을 영위하며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산재 없는 그날까지 힘차게 싸우겠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발족한 문송면·원진 30주기 추모위엔 지난달 말 현재 122개 단체와 2900여명의 노동자·시민들이 추모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추모위는 안전권 보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화학물질 알권리 완전 보장 등을 주요 의제로 내걸고 각종 홍보·추모사업을 진행 중이다. ‘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이기도 한 7월 첫주 ‘반도체 직업병과 인정사례 세미나’(3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 ‘삼성 포위의 날’ 행사(4일 저녁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를 비롯해 노동안전보건과제 대토론회(1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 등을 연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