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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임금보전 미끼 ‘탄력근로제’ 종용…기업들, 주52시간 회피 꼼수

등록 2018-07-05 09:56수정 2018-07-05 10:13

정부 권장방침 속 사쪽이 압박
“현장선 원래 일하던대로 일해”
51% “사쪽이 유연근로제 요구”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첫 근무일인 2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전자상거래 기업 위메프 본사에서 직원들이 정시 퇴근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첫 근무일인 2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전자상거래 기업 위메프 본사에서 직원들이 정시 퇴근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작됐다. 노동자의 일·생활 양립을 위해 노동시간은 줄이고, 사람을 새로 뽑아 ‘빈자리’를 메우라는 게 주 52시간 근무제의 목표다. 이런 제도 취지와 달리 일부 기업은 유연근로시간제 등을 활용해 노동시간 단축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군포에 있는 한 제조업체 노조위원장 ㄱ씨는 최근 회사와 3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탄력근로제) 도입에 합의했다. 4일 ㄱ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회사에서 임금을 줄이지 않는 조건으로 탄력근로제를 제안해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또 ㄱ씨는 “탄력근로제에 합의하긴 했는데, 주 52시간 근무제가 지켜질지는 알 수 없다”며 “앞으로도 바쁜 라인은 68시간 넘게 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에서나 주 52시간을 강조하는 거지, 현장에서는 원래 일하던 대로 일하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탄력근로제는 냉난방 장비 제조업처럼 계절적 영향에 민감한 업종에 적합한 유연근로시간제의 유형이다. 특정 주(일)의 노동시간을 늘리는 대신, 다른 주(일)의 노동시간을 그만큼 줄여 단위 기간(2주나 3개월)의 평균 노동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에 맞추는 내용이다. ㄱ씨 회사처럼 3개월 단위의 탄력근로제에 합의하면, 일감이 몰리는 주에는 최대 64시간까지 노동시간이 늘어난다.

문제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과 함께 각 기업이 탄력근로제를 지나치게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탄력근로제를 도입하면 실제 노동시간을 줄이지 않고서도, ‘주 최대 노동시간은 52시간을 넘을 수 없다’는 근로기준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가능하다.

노동자로서도 사쪽이 ‘임금 보전’ 등을 조건으로 탄력근로제를 제안하면 거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ㄱ씨는 “그동안 주 68시간 이상 일하며 잔업 및 특근 수당을 받아 어느 정도 월급을 맞춰왔는데,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다면서 노동시간을 줄이면 임금도 함께 감소하는 문제가 생긴다”며 탄력근로제 합의 배경을 설명했다.

ㄱ씨 회사 말고도 실제 유연근로제를 근로기준법 위반 회피 수단으로 쓰려는 회사는 적지 않다. 지난 1일 한국노총이 산하 267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노동시간 단축법 시행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회사 쪽이 탄력근로제 등 유연근로제 활용을 요구하거나 노사 간 논의가 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137곳(51.3%)이 “그렇다”고 답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 138곳 가운데에서는 88곳(64%)이 “그렇다”고 답했다. 절반이 넘는 사업장에서 탄력근로제 등 유연근로제 도입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사업장 모두가 탄력근로제 대상인 ‘계절적 영향을 받거나 시기별 업무량 편차가 많은 업종’이라 보긴 어렵다.

탄력근로제 도입으로 주 최대 52시간 위반을 겨우 면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버스가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버스회사 가운데 300인 이상을 고용한 업체는 이달부터 주 최대 노동시간이 68시간으로 제한된다. 내년 7월1일부터는 주 52시간 근무제의 적용을 받는다.

많은 버스회사는 노사가 사실상 1년 단위의 탄력근로제를 합의해 내년 6월말까지 ‘1일 2교대’로 전환하지 않고 지금처럼 ‘격일제’나 ‘복격일제’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광주전남지역 버스노조 관계자는 “3개월 단위의 탄력근로제를 3개월마다 연장해 내년까지 이어가기로 했다.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핵심은 기사 증원인데 회사가 사람을 뽑으려 해도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많지 않다. 기사들도 당장의 임금 감소를 반기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많은 버스회사도 결국 노동시간을 줄이기보다 법 위반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연근로제를 도입한 것이다.

위성수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정책부장은 “지난 법 개정으로 노선버스가 특례업종에서 빠졌지만 여전히 주 68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사실 주 60시간이 넘는 노동은 고용노동부 고시에서도 과로로 인정된다. 노동시간 단축을 싫어할 노동자는 없지만 현실적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유지의 접점을 찾으려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의 후속 대책으로 내세운 유연근로제가 결국 노동시간 단축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준도 ‘노동자의 미래’ 정책기획팀장은 “임금 삭감에 대한 노동자의 우려를 이용해 탄력근로제 합의를 끌어내는 기업 사례가 늘고 있다. 초과노동을 줄여 실노동시간을 단축하자는 법 개정 취지에 역행하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외환위기 시기에 도입된 탄력근로제는 노동자 보호보다 사용자 편의를 위한 제도다. 장시간 노동을 주기적으로 반복하고 집중적으로 노동시간이 늘면서 산재가 늘 가능성이 있고 일자리 창출에도 방해가 된다”고 했다.

이지혜 박기용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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