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는 출범 1년을 맞아 이달 중 ‘대한민국 직장인 갑질지수’를 발표할 계획이다. 직장갑질119 제공
“본인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9개월 다녀왔고, 나는 회사의 룰을 세워야 하잖아. 다른 팀으로 보내면 ‘프라이드’ 때문에라도 (회사를) 그만두겠거니 했는데 그러지 않더라고. 아직 더 다니고 싶은 거예요?”
지난 2월 온라인 가격비교 쇼핑몰 ㄷ사를 스스로 그만 둔 이아무개씨가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 쪽에 제보해 온 상사의 말이다. 회사의 ‘룰’를 무시하고 육아휴직을 쓴 이씨에 대해 ‘사직 권고’ 차원에서 인사 조처했다는 얘기다.
13년 경력의 웹기획자인 이씨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뒤 본인 업무와 무관한 디자인 부서로 발령받았다. 이씨는 “애초 육아휴직에 앞서 회사로부터 ‘육아휴직을 석달 이상 하면 인사 조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고 했다. 육아휴직을 이유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준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씨의 제보는 직장갑질119를 통해 <한겨레>로 전해져 지난 5월 기사화됐고, 보도 뒤 ㄷ사는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을 받아야 했다.
직장 내 각종 ‘갑질’을 폭로한 이들의 조력자 구실을 해온 직장갑질119가 1일로 출범 1년을 맞았다. 직장갑질119 쪽은 출범 1년 동안 받은 제보가 총 2만2810건(이메일 4910건·오픈카톡 채팅방 1만4450건·밴드 3450건)에 달한다고 이날 밝혔다. 146명의 노동전문가와 노무사, 변호사 등이 상담에 참여했고, 별도 생업에 종사하는 활동가들이 자원봉사로 상담한 시간은 카카오톡을 통한 경우만 3176시간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간호사들의 선정적 장기자랑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은 한림대성심병원에선 병원 쪽의 부당한 갑질이 폭로되면서 한 달 만에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단체협약도 체결됐다고 했다. ‘어린이집 갑질근절 보육교사모임’ 같은 온라인모임이 직장갑질119를 통해 만들어지고 콜센터 상담사,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업종에서 모임이 추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직장갑질119 쪽은 “한림대성심병원의 갑질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여러 병원과 회사에서 슬그머니 장기자랑을 없앴다. 용기를 낸 직장인들이 또 다른 갑질을 폭로하기 시작했고 그런 용기와 갑질 기록, 모임이 직장의 풍경을 조금씩 바꿨다. 정부가 공공기관 갑질근절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직장갑질119는 출범 1년을 맞아 이달 중순께 총 10개 영역 75개 문항으로 된 ‘대한민국 직장인 갑질지수’를 발표할 계획이다. ‘행복지수’, ‘인권지수’처럼 직장인들이 각자 경험한 갑질이 어떤 유형이고 어느 정도 강도인지를 따져볼 수 있는 지표다. 직장갑질119 쪽은 “직장인들이 겪은 각종 갑질 제보를 바탕으로, 지난 5개월 동안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과 토론을 통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