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이 끝난 뒤, 삼성전자 김기남 대표이사, 김지형 조정위원장와 반올림 황상기 대표 등 참석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삼성전자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23일 만나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을 치르며 ‘삼성 백혈병’ 문제는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노동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제도와 관행을 개선해야 하는 숙제가 산적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와 반올림 사이를 중재한 김지형 조정위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협약식 인사말에서 “이 문제를 계기로 삼아, 앞으로 우리 국가와 사회가 노동자의 건강권이라는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무엇을 다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정부를 대표해 고용노동부, 국회를 대표해 환노위(환경노동위원회)가 ‘시즌 2’를 이끌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것으로 엔딩 크레디트와 다음 작품 예고편 소개를 마치겠다”는 말로 인사말을 마무리했다. 삼성을 상대로 한 반올림의 투쟁은 이날로 끝나지만, 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한국 사회의 발걸음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부터 시작해 2011년까지 대법관을 지낸 김 위원장과 조정위원인 정강자 인하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백도명 서울대 교수(환경보건학)는 지난 1일 중재위 권고문에서 4년가량의 중재 과정에서 얻게 된 경험과 향후 과제를 “국가와 사회에 대한 권고”로 풀었다. 이들은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보장하는 것은 헌법에 담긴 국가와 사회공동체 모두의 책임”이라며 “노동건강권의 적정한 보장을 이뤄내기 위해 산재 판정에서 인과관계의 증명 책임을 전적으로 노동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적정한 보상의 실현에 막대한 장애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공동체 모두가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며 “노사 대표와 전문가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반올림 대표인 황상기씨도 인사말에서 앞으로 풀어야 할 중요한 “몇가지 숙제”를 제시했다. 같은 반도체·엘시디 라인에서 일하지만 보상 대상에선 제외된 사외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과 삼성의 다른 계열사, 국외 사업장에서 각종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들의 문제도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지금까지 많은 산재 노동자들에게 절망을 안겨준” 산재보험 제도와 근로복지공단 문제도 숙제로 제시했다. 현장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어떤 화학물질이 쓰이는지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알 권리’와 ‘참여할 권리’를 강화하는 방안, 이를 위해 노동조합 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단결권을 보장하는 문제도 빠지지 않았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 해외 공장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문제도 황씨가 제시한 남은 숙제다.
2028년까지 진행될 피해자 보상과 삼성전자가 출연하는 500억원의 사용 등에 대한 사회적 감시도 과제다. 삼성전자는 이날 피해보상 업무를 법무법인 지평에 위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재를 이끈 김지형 조정위원장이 지원보상위원회 위원장을 맡는다. 500억원의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은 전자산업안전보건센터 설치 등 산업안전보건 인프라 구축에 쓰인다.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은 이날 “중재안에서 정한 지원 보상안과 지원보상위원회 위원장이 정하는 세부 사항에 따라, 지금부터 2028년에 이르기까지 보상이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기용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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