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 해 동안 산업재해보험 요양급여(치료비) 신청 건수가 지난 2009년 이후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을 업무와 관계된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비율도 대폭 늘었다. 이런 경향은 ‘사업주 확인제’ 등을 없앤 덕으로, 현 정부 들어 눈에 띄게 달라진 결과다.
근로복지공단은 25일 지난해 산재보험 요양급여 신청 건수가 13만8576건으로 한 해 전보다 21.9% 늘었다고 밝혔다. 전체 산재의 10%가량을 차지하는 업무상 질병의 인정률은 지난해 63.0%로 전년 52.9%보다 19.1% 높아졌다.
이는 앞선 10년 동안의 추세와 확연히 달라진 것으로, 산재보험 신청 건수는 10년 전인 2009년 이후 2017년까지 줄곧 11만건 수준이었다가 지난해에는 14만건 가깝게 늘어난 것이다. 업무상 질병 인정률은 2009년 이후 2016년까지 35~45%를 오가다 2017년 52.9%, 지난해 63.0%로 눈에 띄게 늘었다.
공단 쪽은 산재보험 신청 때 사업주에게 재해 경위에 대한 사실 확인을 받아야 했던 ‘확인제도’를 지난해부터 없애면서 노동자가 사업주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산재보험 신청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주효하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사업주 확인제는 1964년부터 시행됐는데, 그간 산재보험 신청의 주된 걸림돌로 평가돼 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이 제도 폐지로 정부혁신우수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단은 또 지난해부터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던 중 발생한 사고를 산재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과, 지난해 하반기부터 모든 사업장으로 산재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한 것도 산재보험 신청 건수가 늘어난 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상시 노동자 1인 이상인 사업장, 공사금액 2천만원 이상인 건설공사가 대상이었는데 ‘상시 근로’ 개념이 없어져 잠깐이라도 누군가를 채용한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게 됐다. 고용부는 영세 사업장에 종사하는 19만명의 노동자들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업무상 질병의 인정률이 상승한 건 산재 판정 때 ‘추정의 원칙’ 적용을 강화한 것이 원인이 됐다. 추정의 원칙은 작업(노출)기간, 노출량 등에 대한 인정기준을 충족하는 경우 이에 대한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공단은 또 만성과로 인정 기준시간을 세분화하고 야간근무시 주간근무의 30%를 가산하는 등 ‘뇌심혈관질병 만성과로 인정기준’을 개선한 것도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노동계에서 그간 꾸준히 제기했던 문제의 일부가 받아들여진 결과”라며 “화물차량 운전자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산재보험 보호 대상으로 포괄하고 반도체 사업장 등 일부에만 적용되는 추정의 원칙을 다른 근골격계 질환 등으로 확대하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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