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30 09:18
수정 : 2019.12.31 02:41
⑨박종식 기자가 꼽은 2019년 마음 한 장
2019년, 여러분이 웃고 울었던 현장에 <한겨레> 사진기자들도 있었습니다. 한 해를 정리하는 맨 마지막날까지 그 마음에 남은 사진 한 장들을 모았습니다. 새해에도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마음을 잇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다짐하며 `2019년 마음 한 장'을 9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올해 마지막은 박종식 기자가 꼽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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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용균씨의 1주기에 동료노동자들이 그를 추모하며 국화를 들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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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1일, 파인텍 해고노동자 홍기탁, 박준호씨가 서울 목동 75m 열병합발전소 굴뚝 원형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굴뚝 아래 300여명의 시민들은 “홍기탁, 박준호 힘내자”, “우리가 함께할게”라고 외쳤다. 426일 만에 땅에 발을 디딘 두 사람은 이동식 침대로 옮겨졌고, 동료들은 파업가를 불렀다. 이들은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으로 옮겨졌고, 며칠 뒤 기력을 회복한 홍기탁씨는 “김용균 동지의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내려오지 못했을 겁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돈이 우선이냐, 사람 목숨이 우선인 거 아니냐’ 이렇게 말씀하셨고, 이게 사람들의 공감을 형성한 거죠”라고 말했다.
2019년 4월 4일, 지상 30m 위 철망으로 만든 좁은 길을 지나 닿은 곳에는 김용균씨를 빨아들인 석탄이송 컨베이어 벨트가 시커멓게 자리잡고 있었다. ‘안전제일-접근금지’라고 적힌 주황색 줄 뒤로 석탄가루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김용균씨가 이상 소음을 듣고 몸을 집어넣었을 좁은 구멍 사이로 진상규명위원들의 헤드랜턴이 컨베이어 벨트를 비췄다. 빛에 의지하지 않으면 분간하기 쉽지 않은 어둠이었다. 빛이 지나간 자리로 석탄가루가 일렁였다. 이날은 진상규명위원회와 언론에 김용균의 사고현장이 첫 공개되는 날이었다. 김지형 진상규명위원장은 “기술적인 부분이 많아 조금 더 공부를 하고 말씀드리는 게 좋겠다.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진상규명위 활동을 통해 용균씨와 같은 비극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9년 12월 10일, 김용균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은 지 1년이 되는 날 김씨의 동료들이 방진마스크에 안전모를 눌러쓴 채 김씨가 출근하던 길 위에 섰다. 김용균씨의 동료와 어머니 김미숙씨가 선두에 서 김씨가 출근하던 길로 행진을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는 손팻말을 들었던 김용균씨를 대신해 동료들은 국화를 들고 김씨가 일했던 발전소로 향했다. 쉴 새 없이 하얀 연기를 내뿜는 발전소 외벽에는 ‘안전은 우리의 약속’이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김미숙씨는 “오늘도 이낙연 총리가 언론을 통해 김용균 특조위의 22개 권고 사항이 노·사간의 합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시행이 안 될 뿐, 잘되는 것으로 안다고 여론을 호도하는 것을 보니 지난 1년간 헛수고한 것 같은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2019년 12월 30일, 노트북 모니터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부터 파인텍 노동자 고공농성 해제, 김용균씨 분향소, 김복동 할머니 장례식, 대법원 국정농단 사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전두환 재판, 세월호 분향소 이운식, 버닝썬 사건, 낙태죄 폐지, 김학의 사건 진상조사, 이희호 여사 장례식, 베트남 삼성반도체 사망노동자, 일본 화이트리스트 제외,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 조국 사태, 돼지열병 발생, 그리고 김용균 1주기 추모제 등 2019년 취재의 흔적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마우스를 옮겨 ‘191210 김용균’이라고 적힌 폴더를 열어본다. 폴더 속에는 A15I0001, A15I0002, A15I0003, A15I0004, A15I0005, A15I0006, A15I0007, A15I0008, A15I0009, A15I0010, A15I0011,.................. 라는 이름으로 된 일련번호가 매겨진 사진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일련번호로 남은 사진들이 과연 어떤 의미었을까 생각하니, 김미숙씨의 말처럼 ‘지난 1년간 헛수고한 것같은 자괴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홍기탁, 박준호씨의 426일 고공농성을 멈추게 했던 것이 김미숙씨의 노력이었던 것을 떠올리며, 내 1년의 ’헛수고’ 역시 세상의 변화를 향한 단초가 되리라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새해 일출 사진에 대한 단상을 적은 사진기자 선배의 문장으로 내 마음을 대신해 본다.
“지구의 다른 편에서 열심히 일하다 온 똑같은 태양을 보고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그 능력 때문에 인간은 좌절에 굴하지 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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