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 기업주만 웃는다
대구지역의 한 업체 대표 ㅊ씨는 지난 2002년 9월 12일 임금체불 혐의로 고발됐다. 대구지방노동청은 잠적한 ㅊ씨의 소재를 찾지 못해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다 2004년 4월 그가 검문에 걸려 발견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경찰은 노동청에 출두하라며 풀어줬지만 ㅊ씨는 다시 잠적했다. 이 사건을 맡은 노동청 근로감독관은 당연히 ㅊ씨의 소재파악에 들어가 지명수배를 해야 했지만 시간이 없어 미루다 담당자가 교체됐고, 후임 감독관이 제대로 사건을 인계받지 못하는 바람에 ㅊ씨의 혐의는 지난해 3월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검찰은 최근 대구지방노동청과 북부노동사무소 근로감독관들의 수사장부를 점검한 결과, 3개월 이상 장기 방치 사건 85건을 적발했다고 3일 밝혔다. 특히 이 가운데 위 사례처럼 공소시효를 넘긴 사건도 22건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방치 사건들은 대부분 임금체불 사건이다. 소재가 확인되지 않던 사업주가 발견되면 즉시 소환을 해 수사한 뒤 검찰에 송치해 기소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근로감독관들이 사업주의 소재를 확인하고도 3개월 이상 사건을 방치해 공소시효를 넘기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심지어 1년 이상 장기 방치한 사건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에 대해 대구지방노동청에 원인을 규명하고 개선대책을 수립하도록 요구했다. 대구지검 관계자는 “대구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이런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고의라기보다는 업무 폭증과 미숙에 따른 것이어서 시정지시를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노동청은 노동자가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관인데 실수로 임금체불 기업주의 공소시효를 넘긴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며 “노동부가 이런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구지방노동청 쪽은 지난해 접수한 사건만 7천 건이나 돼 시급한 신규 진정·고발사건부터 처리하다 보니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대구지방노동청 전재성 근로감독과장은 “자체 감사에서도 지적이 돼 시정 중이며, 앞으로 전산화 작업 등을 통해 재발을 막겠다”고 말했다. 대구/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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