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30일 소방관들이 잔해 처리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자 38명이 희생된 이천 물류센터 공사현장 화재 참사와 관련해 유사한 비극이 되풀이되는 원인 중 하나로 기업과 경영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지목되고 있다. 노동자 산재 사망을 초래한 기업을 형사처벌하는 영국의 ‘기업살인법’처럼 우리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판 기업살인법으로 일컬어지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무엇일까.
①경영자 처벌 강화, 법인도 범죄주체로 보고 처벌: 20대 국회에 등장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은 2017년 4월 세월호 3주기를 맞아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발의했다. 당시 노 의원은 “현행법은 재해가 일어나도 경영 책임자를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처벌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밝혔다. 이 법은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 및 경영자에 대해 법정 최저형을 3년형으로, 벌금 상한을 5억원까지 높였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최저형이 없고 벌금 상한은 1억원이었다. 게다가 경영진들은 직접적인 책임이나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감형되거나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가 많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기소된 존 리 옥시 전 대표가 무죄 선고를 받은 게 대표적이다.
대법원 사법연감을 보면, 2007~2016년 10년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의 형사재판 건수는 모두 5109건(1심 기준)이었으나, 이 가운데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0.5%인 28건뿐이었다. 절반 이상(3413건)이 벌금형이었고, 집행유예(582건)와 선고유예(194건) 판결도 많았다.(권오성, 2019.11, <노동법 포럼>, ‘소위 기업살인법 도입 논의의 노동법적 함의’)
이 법은 경영진 개인에 대한 처벌과 별개로 ‘법인’에 부과하는 벌금형 상한을 10억원으로 크게 높였다. 스크린도어 정비를 하다 사망한 ‘구의역 김군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은성PSD는 지난해 6월 항소심에서 벌금 3000만원 선고받은 바 있다.
②영국은 벌금 최대 300억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07년 영국이 도입한 ‘기업살인법’과 유사해 ‘한국판 기업살인법’으로도 일컫는다. 영국은 경영자가 아닌 ‘법인’을 범죄 주체로 보고 과실치사, 과실치상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을 2007년에 도입했다. 이 법으로 처음 형사처벌된 기업(Cotswold Geotechnical Holdings)은 노동자 산재 사망에서 38만5천파운드(5억81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이 법은 매출 규모에 따라 벌금 양형이 정해지는데, 매출 규모가 5천만파운드(약 755억원) 이상 기업의 상한은 최대 2천만파운드(약 302억원)이다. 영국에서 기업살인법 도입 논의가 활발해진 계기는 1980년대 후반 기업의 과실로 발생한 대규모 참사 때문이었다. 1987년 런던 도심에 있는 킹스크로스 지하철역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30여명이 사망했다. 같은 해 영국과 벨기에를 운항하는 유람선(Zeebrugge)이 침몰해 193명이 사망했다. 특히 유람선 참사와 관련해 선박 회사(P&O)를 수사당국이 기소하는 데 실패하면서 개인을 넘어 법인의 책임을 묻는 데 기존 법이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국제노동브리프, 2013.10, ‘업무상 사망에 대한 사용자의 형사책임: 영국 사례’)
1983년~1992년 10년 동안 5774명, 연평균 600여 명이 산재로 사망했다는 통계가 이슈화하는 등 산재 사망의 심각성이 공론화한 것도 ‘기업살인법’ 도입 논의가 활발해진 계기였다. 한국은 지난해 855명이 산재 사망으로 숨졌다. 2015년 기준 한국의 건설업 사망만인율(1만명 당 사망자 수)은 1.65로 영국 0.16의 10배에 달한다.
③공무원도 처벌: 영국 기업살인법의 특징은 산재 사망이 발생할 경우 기업 뿐만 아니라 정부 기관도 처벌한다는 점이다. 기업살인법이 정한 처벌 대상은 정부조직, 지역경찰, 노동조합, 사용자협의회까지 과실치사 및 살인 행위의 주체로 보는 대상 범위가 상당히 넓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도 ‘재해에 대한 정부 책임자 처벌’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기업의 안전 의무 위반으로 인한 재해사고에는 ‘관피아’라 불리는 공무원의 의식적 직무 방임이 수반되는 경우가 빈번”하며 관리·감독 및 인허가 권한을 지닌 공무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취지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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