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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OO목사님들이 웹툰 ‘송곳’을 보는 까닭은

등록 2020-08-17 06:59수정 2020-08-17 19:23

전국기독노조추진위, 9월 초 출범 준비
“목사가 성직자라 노동자 아닌 것 아냐”
“권리 찾기, 노조는 성경과 맥 맞닿아”
엄태근 목사가 페이스북에서 운영하는 ’부교역자 인권찾기’ 페이지 갈무리
엄태근 목사가 페이스북에서 운영하는 ’부교역자 인권찾기’ 페이지 갈무리

“하나님 상대로 쟁의합니까!”

개신교계에서 노동조합을 한다고 하면 종종 교인들로부터 이런 항의를 듣는다고 한다. 노조에 거부감도 크고, 교역자(부목사·전도사 등)나 직원들이 하는 ‘교회일’을 노동이 아닌 ‘봉사’로 보기 때문이다. 2004년 6월 개신교계 첫 노조인 ‘전국기독교회노동조합’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재판국이 “노조를 한다며 장기간 목회를 하지 않았다”며 위원장인 이길원 목사를 면직·출교(2016년5월) 조치함으로써 끝이 났다. 이 목사는 면직 무효 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승소, 현재 대법원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개신교에 다시 노조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부목사로 일하다 담임목사의 통보로 일자리를 잃은 목사들이 주축이 돼 ’전국기독노동조합 추진위원회’(추진위)를 꾸려 이달 말이나 9월초께 노조설립 신고를 할 계획이다. 현재 강령, 목표 등을 토론 중이며, 가입 대상은 부목사, 전도사, 교회 직원, 선교단체 간사 등이다.

추진위는 지난 10일까지, ‘교역자 휴일’인 매주 월요일 6차례 만나 노동조합 결성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다룬 만화 <송곳>을 읽고 토론도 했다. 추진위 대표인 엄태근 목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송곳>을 함께 읽으면서 노조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에 공감대가 형성됐고,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예배당 문화에 맞게 노조를 만들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애초엔 민주노총에 가입할 계획이었지만, ‘심리적인 문턱’을 낮추자는 내부 의견이 많아 상급단체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교회나 담임목사한테 돈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으로는 크게 교역자(부목사, 전도사 등)와 일반직원(사무간사, 관리집사, 지휘자, 간주자 등)이 있다. 이들이 법적으로 ‘노동자’인지 아닌지는 판례마다 다르다. 특히 부목사는 일종의 ‘부사장’이나 ‘임원’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엄 목사 역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3년을 일하기로 약속하고 부목사로 재직했던 세종시 한 교회에서 담임목사와의 마찰로 1년 만에 일자리를 잃었는데, 이와 관련해 2018년 10월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지난달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은 ‘담임목사와 부목사가 종속적인 관계인지 단정할 수 없다’는 등의 취지로 엄 목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엄 목사는 “매주 사역보고서를 쓰고, 실시간으로 카톡이나 문자로 지시를 받는다. 그 근거와 통화내역까지 제출했지만, 결국 법원은 고립된 예배당 논리를 받아들였다”며 “교회 내 실태를 제대로 안다면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관계가 군인들 관계보다 더 엄격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 목사 쪽은 대법원 재판 과정에서 부목사들의 현실을 고발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담임목사를 보좌하는 부교역자(부목사)들은 정해진 근로시간 외에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근무합니다. 정해진 휴일인 월요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합니다. 담임목사가 지시하면 행정, 청소, 운전 등 교회 내외의 모든 대소사를 챙겨야 합니다. 그럼에도 사례비는 최저임금 수준입니다. 무엇보다 담임목사가 그만두라고 하면 한순간에 해고당하는 불안정한 지위에 있습니다. (중략) 법원의 개입은 종교적인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개선해 나가야 할 노동 인권의 문제라는 점에 유념해 주시길 간청드리며 탄원 드립니다. (중략) 원고가 소속되어 있는 장로교단(합동)은 종교개혁자 칼뱅의 개혁주의를 신봉합니다. 칼뱅은 ‘모든 직업은 성직이다(직업소명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목사처럼 종교적인 업무를 맡고 있다 해서 별도로 ‘성직’이라고 칭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무엇 하나 성직이 아닌 것이 없으므로, 목사가 성직자여서 노동자가 아니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엄 목사는 5월 초 페이스북에 ‘부교역자 인권 찾기’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석 달 만에 1천명이 넘는 회원들이 가입했고, 부당해고 등으로 상담을 요청한 교역자들만 수십명이라고 한다. 최저임금보다 못한 급여를 받는 전도사부터 담임목사와의 언쟁 다음 날 해고 통지를 받은 부목사, 4대 보험에 가입되지 않아 일하다 다쳐도 산업재해 신청도 할 수 없는 교회 직원 사례가 수두룩하다 했다. 요즘 추진위는 이런 문제가 불거진 교회들을 찾아가 기도회 형식의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사단법인 기독교윤리실천본부가 지난 2014년 12월8일부터 2015년 1월11일까지 부목사 9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4.2%가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했고, 79.3%는 ‘교회와의 사역 계약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10.8시간이고, ‘쉬는 날’인 월요일에도 못 쉰다는 답변은 47.8%였다. ‘자신의 삶을 주관적으로 정의해달라’는 질문에는 ‘종, 머슴, 노예’라는 답이 10.8%로 가장 많았다.

엄 목사는 “최근 코로나19로 교회가 어려워지자 갑작스럽게 일자리를 잃은 교회 근로자들이 많았다. 상세하게 밝히진 못하지만 여력이 되는 초대형교회에서도 그런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를 만든다고 하니 교계에선 ‘임금 올려달라, 초과근로수당을 달라고 할 것’이라거나 ‘예배폐쇄나 파업을 할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우리가 추진하는 기독노조는 최소한 근로계약서는 써야 하는 것 아니냐, 최소 3개월 전에는 해고 사실을 통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상식적인 요구를 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역자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의 최소한의 기본권을 요구하는 것이 목표다. 세상 어느 곳보다 상식이 통해야 할 교회가 상식에 맞게 바뀌도록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성경에선 노조를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엄 목사는 구약성경의 민수기 27장에 관해 설명했다. 슬로브핫이라는 사람이 아들 없이 사망하자, 그의 딸들이 당시 아들만 가업을 잇게 한 관습이 부당하다며 자신들도 가업을 잇게 해달라고 지도자(모세)와 대중들에게 호소하는 장면이다. 엄 목사는 이를 이렇게 해석했다. “노동조합이 성경에 직접 언급되진 않지만, 성경에도 자기 권리를 찾아가는 내용들이 나온다. 노조 활동도 자기 권리를 찾아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와 맥이 닿는다.”

담임목사에게 종속된 부교역자들은 노동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1년 비정규직입니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전근대적인 노동관계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사회문제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 나라 원리인 예수 한 몸이 되어, 교회 내 노동자들이 최소한 헌법이 보장한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도록 동참해 주십시오. 총체적으로 부조리한 예배당을 개혁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페이스북 ‘부교역자 인권 찾기’ 소개글)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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