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정 사장님, 너무하십니다. 요 앞에 대형할인점이 들어오는 바람에 장사 안 되는 것, 사장님도 아시잖아요. 월세 몇 달 미뤘다고 통장을 모두 압류하시다니, 정말 너무하십니다.”
“이 사람아, 사정할 걸 사정해야지. 나도 자네 사정 봐 줄 형편이 아니야. 지난달에는 우리 애들 캐나다서 공부하는데, 송금도 못해줬어. 마누라가 얼마나 바가지를 긁어대는지 알아?”
“이 슈퍼는 제 인생이 전부 걸린 가게입니다.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했을 때 받은 퇴직금과 아내가 맞벌이하면서 모은 돈으로 차린 거란 말입니다. 한 달 월세 230만원 내고 나면 생활비는 한 푼도 안 남아요. 사장님 월세 벌어드리느라 저희 식구는 굶어 죽으라는 말씀이십니까?”
“자네 사정은 내 알 바 아니고, 밀린 월세나 제때 갚으면 압류를 풀어주도록 하지.”
건물을 가졌다는 이유로 한 달 뼈 빠지게 일한 노동의 대가를 몽땅 가져가버리는 건물 주인만 보면 울화통이 치밉니다. 그 얄미운 면상을 한 방 날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새벽까지 잠자리에서 뒤척이던 남편은 집 밖으로 뛰쳐나옵니다. 석유통을 들고 가게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남편의 얼굴은 분노로 이글이글 타는 것 같습니다. 남편이 집을 나서는 것이 불안했던 아내는 뒤를 쫓았습니다.
“여보! 뭐 하는 짓이에요!”
갑자기 나타난 아내를 본 남편은 흠칫 놀랍니다. “날 말리지 마! 이 더러운 세상, 불을 확 싸질러버리고 말 거야.” 남편은 말리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는 석유가 가득 든 플라스틱 통을 들고 가게 쪽으로 후다닥 뛰어갑니다. 아내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쫓아갑니다. 남편의 얼굴은 성난 짐승처럼 무섭게 일그러져 있습니다. “여보! 제발 이러지 말아요. 불을 지른다고 문제가 해결된다면, 나도 당신을 말리지 않겠어요. 당신이 불을 지른다면 그건 당신 손으로 당신과 우리 가족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 일이 되고 말 거예요. 제발! 이런 짓 하지 말아요.” 아내가 울며불며 매달리자 남편도 길바닥에 주저앉아 꺽꺽 피울음을 토해냅니다. 가난한 부부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광경을 가로등이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여보, 고마워요. 난, 당신을 믿어요. 당신은 앞으로 무슨 힘든 일이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눈물로 잔뜩 얼룩진 얼굴에 애써 웃음을 지으며 아내가 말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당신은 당신 자신을 이긴 사람이에요. 한순간의 불같은 분노를 이겨내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잖아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낸 거예요.” 김옥숙/소설가
갑자기 나타난 아내를 본 남편은 흠칫 놀랍니다. “날 말리지 마! 이 더러운 세상, 불을 확 싸질러버리고 말 거야.” 남편은 말리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는 석유가 가득 든 플라스틱 통을 들고 가게 쪽으로 후다닥 뛰어갑니다. 아내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쫓아갑니다. 남편의 얼굴은 성난 짐승처럼 무섭게 일그러져 있습니다. “여보! 제발 이러지 말아요. 불을 지른다고 문제가 해결된다면, 나도 당신을 말리지 않겠어요. 당신이 불을 지른다면 그건 당신 손으로 당신과 우리 가족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 일이 되고 말 거예요. 제발! 이런 짓 하지 말아요.” 아내가 울며불며 매달리자 남편도 길바닥에 주저앉아 꺽꺽 피울음을 토해냅니다. 가난한 부부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광경을 가로등이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여보, 고마워요. 난, 당신을 믿어요. 당신은 앞으로 무슨 힘든 일이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눈물로 잔뜩 얼룩진 얼굴에 애써 웃음을 지으며 아내가 말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당신은 당신 자신을 이긴 사람이에요. 한순간의 불같은 분노를 이겨내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잖아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낸 거예요.” 김옥숙/소설가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