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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학원·컴퓨터에서 벗어나 아홉살 소년에게 자유를

등록 2007-05-14 20:01

나의자유이야기 /

2007년 4월 30일 월요일 맑음

학교에서 교과서 공부를 안했다. 선생님이 2시36분27초59까지 나가 있었다. 나는 너무 좋았다. 학교, 교과서 싫어! 난 학교가 싫은 것도 아니고 교과서가 싫은 것도 아녀! 난 교과서가 왜 싫은 거냐면 글쓰는 게 싫다.


며칠 전 들춰본 아이의 일기장이다. 녀석, 교과서 공부도 안 하고 얼마나 꿀맛 같았을까. 큰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놀아도 놀아도 더 놀고 싶다고 조를 때다. 그 마음을 헤아리고도 남는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마치면 책가방 던져놓고 뛰어나가 고무줄 놀이며 공기 놀이로 해가 저물었고, 철따라 숲 속을 휘젓고 다니며 진달래꽃이며, 싱아며, 산딸기를 따 먹었더랬다. 어스름 저녁 집으로 가는 길, 숙제라도 안 한 날이면, 물먹은 솜마냥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지….

아홉살 남자아이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어른인 나도 하루하루 쉽게 살아지는 날이 없건만,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강요하는 삶이란 게 너무 버거운 건 아닌지 측은해 보일 때가 있다. 여느 아이들처럼 짜여진 학원 시간표에 끌려 다니다 하루를 마감하게 하고 싶지 않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축구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딱지치기도 했으면 좋겠다. 가끔은 심심해하고, 삶의 쓸쓸함, 슬픔 같은 것도 느낄 줄 알고…그랬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가 마냥 한가로운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세 번 수영을 하고, 좋아하는 바둑과 레고도 한 시간씩 배우고, 숙제도 하고, 일기도 쓴다. 그런데도 놀 시간이 꽤 많이 남는다. 여기에는 중요한 비밀이 숨어 있다. 컴퓨터! 집에 컴퓨터가 없어야 한다. 아이에게 컴퓨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 온라인 게임에 시간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 남편과 나는 아이에게 컴퓨터를 되도록 늦은 나이까지 사주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2학년인데도 벌써부터 학교에서 컴퓨터 사용을 요구하는 만큼 초등학교 고학년을 넘기긴 어렵겠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버틸 작정이다.

2007년 4월 22일 일요일 맑음

오늘 자전거를 탔다. 난 인생 처음으로 KTX 속도로 달렸다. 자전거 고수가 된 기분이다. 정말 좋다. 나는 세계챔피언전에 나갈지도 모른다. 바람, 바람을 타는 것 같다. 세계최고의 운동은 자전거다.

아이가 자전거를 처음 탈 수 있게 된 날의 일기장을 옮겨 보았다. 부럽지 않으신가요? 자유의 속도를 만끽하는 아홉살 소년의 봄날이.

전수경(서울시 중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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